비를 걷는다

두 사람, 그리고 어떤 여름 비

by 김은령









문득,
걸어야겠다.

터벅터벅 우산 없이 걷다가
길 위에서
큰비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어떤

여름비에 흠뻑 젖었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여름비 그 자체는 찬란했지만
그 빗물에 흠뻑 젖은 나는
결코 아름답지 아니하였다

그러다 무언가
꿈틀꿈틀,
피식피식 웃음이 삐져나왔다

머리부터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물이
땅을 적시며 파문을 일으킬 때
세상의 오래된 껍질이
함께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몸과 마음을 비에 내어준 채 걷다 보니
어느새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옷자락에 물빛 자국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하늘 높이 뛰어볼까?
그러면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
함박웃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래,
그렇게
흠뻑 젖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내야겠다




° 비를 걷는다 _ 김은령 °





뮈리엘 바르베리

『 고슴도치의 우아함 』


여러분은 여름 비가 무엇인지 아는가?


먼저, 여름 하늘을 찢는 순수한 아름다움, 가슴에 엄습하는 무시할 수 없는 두려움, 숭고함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아주 하찮음을 느끼는 것, 스스로 너무 나약하고, 사물들의 위엄이 너무 부풀어올라, 세계의 너그러움에 경악하고, 덥석 물린 채, 매료되는 것.


여름, 그리고 비는 움직이지 않는 먼지들을 쓸어내면서 영혼을 끝없는 숨결 같은 존재로 만든다.


이렇게 어떤 여름 비들은 다른 몸속에서 박동하는 새 심장처럼 우리 속에 닻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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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여름비 ° _ 김은령



두 사람,

어떤 여름 비



이 도시에 비가 내릴 때,
두 사람은 비를 걷는다.

도시의 피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듬으며,
다른 몸속에서 박동하는 새 심장처럼
서로의 우리 속에 닻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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