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불탐으로 숨을 쉰다

앎이 아닌 삶으로

by 김은령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내가 불태워 버린 것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한 책도 있고
영혼을 절망케 하는 책도 있다.
(···)
황홀함이 가득하고 감미로울 정도로 겸허하여
읽으면 광채가 나는 듯한 책도 있다.
(···)
나타니엘이여,
우리는 언제 모든 책들을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 책은 불탐으로 숨을 쉰다 ° _ 김은령





학교 책상 위
숲의 바람결 속
헛간의 건초 더미 아래

책은 그 자리에 따라
다른 숨결로 펄럭였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이 나를 읽었다

햇빛 아래선 감각이었고
그늘 아래선 고요였다

그러나
어떤 책은 나를 파고들었고
어떤 문장은 내 심장을 불태웠다

불길이 활자 사이를 지나
문장을 부수고
형식을 증발시키고
나를 껍질 너머로 밀어냈다

책은
더는 책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한 줌의 숨,
손 안에서 반짝이는 빛의 알,
타오른 후에도 스러지지 않는 잿빛 광휘

그리고 마침내,
책을 불태운 자는,
문장이 아닌 숨으로,
앎이 아닌 삶으로 피어난다




° 몽상의 항해 ° _ 김은령


지식은 타오름의 전 단계다.
불탐은 앎의 소멸이 아니라,
삶으로의 변환을 위한 정화의식이다.

지드의 문장은 그 문턱을 밝혀주었다.
책은 활자로 머물지 않고,
숨으로 — 그리고 존재의 빛으로 변한다.

나는 그 불길 속에서
‘앎이 아닌 삶으로’ 태어나는 언어를 보았다.
불은 문장을 태우지만,
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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