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냄새 Sep 09. 2022

꽃을 선물하는 기분이란

아! 정말 예쁘네요!!

어제 저녁 오랜만에 꽃집에 들렀다.


친구의 생일, 뭘 선물할까..

고민하다 꽃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꽃은 빨리 시들어버려서 선물로는 별로라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꽤 있다. 꽃을 주고 싶으면 차라리 화분으로 주는 게 좋다는 사람들도. 오래 기르며 볼 수 있다는 점에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화분은 다양한 꽃을 섞을 수가 없고, 또 내 눈에 이뻐 보이는 꽃들이 화분에 있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니까^^ (미스터 선샤인의 김희성 음성 지원 ㅋㅋㅋㅋㅋ)


몇년 전 후배에게 생일 선물로 꽃을 보낼 때 무척 망설였다. 과연 좋아할까? 근데 그 애는 “언니! 꽃선물 아무도 안해주는데 받으니까 넘 좋아요!!”라고 했다. 그때 이후 자신감을 얻어(?) 여동생들에겐 가끔 꽃을 선물한다. 완전 실용주의자인 우리 막내도 생일에 내가 준 꽃을 받고, 제부에게 눈을 흘겼다. (아, 제부는 선물도 준비하고 밥도 샀는데… 남편 노릇은 힘든 일이다 ㅜㅜ)



얼마전 읽은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받고 싶어하는 목록에 적힌 것보다 자신이 주고 싶은 것(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는데, 정작 선물을 받은 당사자의 실제 만족도는 본인이 원하는 리스트에 적힌 것을 받았을 때가 훨씬 높다고 쓰여 있었다. (통계 분석 결과니, 대체로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거다.) 이 말대로라면 “뭐 필요해? 뭐 받고 싶어?”라고 물어보는 게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분명하고 쉬운 길이다.


그럴 듯한 연구 결과다.

나도 보통 결혼을 앞둔 친구에겐 뭐가 갖고 싶은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미리 물어보고 선물을 한다. 가족들에게도 대놓고 물어보는 편이다. 그렇지만 생일이나 특별하지 않은 그런 날의 선물은 역시 서프라이즈의 맛이 있다.

갑자기 쨘!


나는 선물을 고르거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과정을 즐긴다. 아주 바쁘지 않다면, 상대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내가 그런 과정을 즐겨서인지, 선물을 할 때 상대의 필요를 잘 물어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들의 만족도가 얼마 정도인지는 잘 모른다. 표현해주는 대로 믿을 뿐. 좋다고 말하면 그대로, 별로라고 말해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고보면 나는 상대보다 내 즐거움을 위해 선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선물을 받을 때도 비슷하다. 동생이나 부모님은 직접적으로 뭘 받고 싶으냐고 묻기도 하고, 내가 먼저 특정한 것을 지정해서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물어봐주는 사람보다는 그냥 본인이 생각해서 선물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위의 연구에서 나는 유의미한 통계 범주 바깥의 인간에 가깝다. 선물의 실용성이나 필요성 보다는 그냥 ‘선물’이라는 것 자체에 더 가치를 둬서 무용한 것들도 좋아한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쓰레기 아니야?’ 하는, 그런 것들. 어쩌면 무용해서, 아무나 주지 않을 것 같아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


사실 그런 선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는 준비하면서 내 생각을 했다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것보다 쓸모 없어도 (본인이 생각했을 때) 내가 좋아할 법한 것이나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 주면, 거기에 감동해버린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내게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내 돈을 주고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내가 나를 위해 직접 사지는 않을 것 같은 게 있다. 꽃도 그런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몇해 전 또래 남녀가 모여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초콜렛과 꽃 중에서 (이성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으면 더 기분 좋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이런 걸로 논쟁이라니 ㅋㅋㅋㅋㅋ) 그때 재미있게도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초콜렛이지!”라고 했다. 아! 발렌타인 선물 같은 걸 말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다들 꽃보다 초콜렛을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초콜렛은 먹을 수라도 있지, 꽃은 엇다 써?


음.. 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또 재미있게도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은 모두 “당연히 꽃이지!”라고 했다. 이해가 안된다는 남자들에게 우린 모두 입을 모아 외쳤다.


초콜렛은 내 돈 주고도 사먹을 수 있거든!

근데 꽃은 자길 위해 사기가 쉽지 않단 말이야.


물론 나는 가끔 산다. 꽃집 지나가다 이뻐서 발길을 자꾸 잡아끌면 나를 위해서도 작은 꽃다발을 사서 오는 쪽이다.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처음 꽃을 받았을 땐, 그 외투에 숨겨진 것이 김 모락모락 나는 호빵이나 붕어빵이길 바랐다. ^^;;;;; 물론 그건 단지 붕어빵은 먹을 수 있고 꽃은 쓸모 없고,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팥이 들어간 빵을, 겨울 간식으로 붕어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게 더 특별하다고, 나에 대해 더 관심 있는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ㅡ 그 뒤에 밤새 꽃이 시들지 않게 아주머니에게 물도 넉넉히 주고 싱싱한 아이로 골라달라고 거듭 부탁했다는 말에, 붕어빵 따위는 금방 잊어버렸다. ㅋㅋㅋㅋ)



어제 꽃집 문을 열었을 때 나와 동시에 20대 초반 정도의 남학생도 함께 문을 밀었다. 우린 둘 다 어떤 꽃을 고를지 고민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그런데 그 남학생의 표정이 꽤 상기되고 설레어 보여서 보는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친구의 친구가 꽃집 개업을 준비 중인데,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꽃집을 택한 이유가 떠올랐다. 꽃을 사러 오는 사람 중엔 화가 나 있거나 짜증난 사람 없이 모두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좋다는 거였다. 어제 나보다 먼저 선택을 마친 그 남학생과 꽃을 다듬는 주인을 보며 그 얘기가 무척 와 닿았다.


그리고 나ㅡ

내 차례가 되자 또 뭘 고를지 망설이다

저기, 뭐 받으면 기쁠 것 같아요? (제 또래 여자 줄건데요)

아,

연한 핑크요, 너무 크거나 활짝 핀 거 말고..

이거요, 아니 저게 더 이뻐요. 저걸로 주세요.


그리고 꽃다발을 묶는 주인을 멍ㅡ 하니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아! 정말 예쁘네요!!


라고, 말해 버렸다.


유리관 속에 있을 때랑 완전 달라요! 훨씬 더 예뻐요!

제 친구도 좋아하겠죠?


순간 그 분이 살짝 미소지었다.

오랜만에 꽃을 사면서, 나는 저녁도 굶고 서너 군데의 꽃집을 돌아다닌 것도 잊은 채 마냥 행복해져버렸다.


아,

이래서 꽃집을 하려는 거였어.

매거진의 이전글 이 이상은 가사로 쓸 수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