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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지 Feb 23. 2020

즐거운 일주일이  

시작되었구나! 1994년 05월 30일

즐거운 일주일이 시작되었구나!

아침에 예지가 말했듯이,
네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며,
꼭 그렇게 될 수 있어. 자신을 가져!

수수께끼)
공은 공인데,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은?

1994.05.30. 엄마가  

월요병이라는 말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닌 것처럼, 대부분의 일주일의 시작은 고단하다.


직장인이 되고부터 '월요일이 즐겁다'라는 느낌으로 시작한 적은 손에 꼽는다. 물론 나는 내 일도 좋아하고 조직생활도 즐거워하는 편이라 출근할 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돈과 책임을 등가 교환하는 입장에서 놀러 가는 것보다 즐거웠던 적은 없다.


어린 나를 향해 '즐거운 일주일이 시작되었구나!'라는 문구로 시작된 쪽지를 보고 적잖이 당황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과연 그때 엄마는 정말 월요일이 좋았을까?


엄마의 마음을 알 턱은 없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는 일주일의 시작을 '즐겁게' 느끼게 하기 위해 스스로도 월요일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최소한 나를 위해서. 엄마는 본인부터 진심이어야 그 마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혹 아이가 학교를 가고 난 뒤에 몰려오는 고단함이 있더라도, 학교에 나서는 발걸음이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기 전까지는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즐거운 표정을 지었을 거다. 



우리의 아침은 인사 말고도 그 날에 대한 다짐 같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평일 아침에도 종종 그런 대화가 오간다. 그 날의 스케줄을 아침에 공유하면서 그 일을 어떻게 하겠다, 그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겠다를 덧붙여 얘기한 습관 탓이다. 그 날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나눴나 보다. 딸이 즐겁고 희망차게 이번 주를 보낼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중요한 일주일의 시작이어서 엄마는 더 확신을 주고 싶었을 거다. 

 

네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며, 꼭 그렇게 될 수 있어.


그때 내가 당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는지 기억이 없다. 이걸 기억해서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정말 좋은 감동 서사였을텐데, 이 쪽지를 다시 발견하기 전까지는 딱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설정해 놓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말, 참 많이 들었는데 그 생각이 딱히 없었다. 


어쩌면 즐거운 일주일의 시작이 아니게 된 시점부터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교를 가고, 직장이 정해지고, 나이가 들면서 이미 너무 정해진 틀과 범주가 있다고 느껴서 그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살면 힘든데, 포기하면 쉬우니까. 그냥 산 시간이 더 많다. 그냥 살아도 그 날 그날 나름의 재미도 있었던 것 같고. 


근데 엄마가 적어준 꼭 그렇게 될 수 있어.라는 말 뒤에 '자신을 가져'라는 문구가 다시 어떤 사람으로 사람이 될 것인지 생각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느낌표까지 박고, 그전에 '꼭'까지 덧 붙였는데 안 하면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서였다. 


적어두지 않으면 잊을 것 같아서 되고 싶은 사람의 면모 몇 가지를 일기장에 적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구체적이지만, 노력하면 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중 몇 개는 이런 것이다. 


바른 자세로 앉으려고 노력해서 몸 선이 예쁜 사람이 되겠다. 

좋은 말을 곱게 잘 전달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 

귀찮더라도 집에 들어와서 씻으며 나를 돌보고 내일 가방을 챙겨 놓고 잠에 드는 사람이 되겠다. 


어떻게 보면,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 딱히 대단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다시피 자신을 가지라고 했는데 이 말을 못 지키는 실패 때문에 자신이 없어지고 싶지는 않았어서 작은 부분을 적었다. 좀 거창한 걸 적는 성인 딸이 되면 좋았을 텐데 엄마. 그치? 



요즘의 나는 도리어 출근할 때 힘들더라도 배웅을 해주는 엄마에게는 웃으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려고 노력한다. 엄마 덕분에 노력보다는 절로 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부담되는 일이 닥쳐올 월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볼에 뽀뽀를 세 번 나누고, 온몸을 꼭 안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해주는 엄마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전날 말다툼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현관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날도 간혹 있다. (올해 그런 적은 아직 없지만) 그 작은 소리를 듣고도 현관문 쪽으로 와서 화 풀라는 듯 배시시 웃는 엄마를 보면 대체 자식이 뭐길래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해주나 싶어 나도 따라 웃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평소처럼 볼에 뽀뽀를 세 번 나누고, 꼭 끌어안는 아침인사를 나눈다.


이제는 내가 엄마보다 월등히 키가 커서 엄마를 안으면 엄마가 내 품 속에 쏙 들어오는데, 그걸 엄마가 참 좋아한다. 나는 간혹 평균보다 큰 내 키가 스스로 부담스러운데 엄마는 그 큰 키를 뿌듯해한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나가면서 엄마를 품에 폭 안고 꽉 끌어안고 힘차게 '다녀오겠습니다'를 열심히 한다.  




지금 엄마의 월요일은 일요일보다 활기찬 편이다. 일요일은 늦잠을 자기도 하고 아파서 약을 먹어야 하는 날이 아니면 아침도 먹지 않기 때문에 다소 느긋한 시작이 되는 반면, 월요일은 온 가족이 다 같은 시간대로 움직여야 돼서 엄마도 평소보다 바쁘다. 이전처럼 아침을 차리느라 바쁜 것보다 시간을 맞춰 배우러 다니는 것이 생겨서 본인의 숙제를 챙기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월요일이 나의 월요일처럼 분주한 게 기분 좋다. 


지금은 일요일 밤이고, 월요일을 앞두고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엄마의 쪽지처럼 즐거운 일주일의 시작이 되고,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엔 지금은 그냥 일요일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렇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니까, 이왕이면 즐거운 월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며, 꼭 그렇게 될 수 있어.


자신을 가져!


후, 엄마. 

응 그럴게! 



정답을 알 길이 없는 수수께끼가 등장.

RE :

엄마,

그 당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까?

아침부터 조잘거리던 그때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솔직히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랑은 조금 다른 사람일 것 같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가져!라는 느낌표로 마무리된 말이 여전히 나에겐 큰 힘을 주는 것 같아. 나는 요즘에도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말한 대로 노력도 조금은 해. 열심히는 아니지만.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겠지.


그럼, 덕분에 나도 즐거운 일주일 시작해볼게.

2020.02.24 예지가.  


P.S 수수께끼의 답은 성공일까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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