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ng for mission
이전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외국 사람들의 답변이 단순히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말하는 것이 인상 깊다고 했다. 가령 이런 식인데,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준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 이름과 직책을 말한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를 회사를 다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그냥 돈 벌려고 다니는데, '무슨 직업의식이냐' 싶은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친구에게 넌지시 '요새 뭐 하면서 먹고사냐?'라고 물어보면 '저번에 ** 다닌다고 했잖아"라고 답한다. '어떤 일을 한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 적이 없다. 우리는 진로 계획이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사회에 나온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직업을 평가한다. 연봉, 워라밸, 성과급, 복지를 기준으로 회사를 고른다. 자신의 소망, 행복, 계발을 위해서 고르는 사람은 소수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경쟁을 하면서 다양한 기준들에 부딪힌다. '돈', '인정', '시간'을 기준으로 가성비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쫓다 보면 결국 목표를 달성해도 또 목표가 생긴다. 내가 오른 그 산의 정상에서 또 올려다보게 되는 경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끝없는 굴레에 갇힌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이 쳇바퀴 같은 목표 지옥에서 스스로를 이탈시킨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무력감을 가지면서, 인생의 팽팽한 끈을 스스로 놓아버린다. 그렇게 생기는 것이 자살이라는 결과이다. 때때로 자살률은 사회의 경고등이라고 석학들이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젠틀한 표현이다. 내가 볼 때는 자살률은 그 사회의 멸망률이다. 높으면 곧 멸종의 길로 간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자살률 순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https://worldpopulationreview.com/country-rankings/suicide-rate-by-country
검색은 2024로 했지만 최신 자료는 2021이다.
World Population Review 사이트의 가장 최신 자살률 조사인 2021 전 세계 10만 명당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4위로 러시아보다 높다. 2022년에 러우 전쟁이 발발한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심상치 않은 숫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숫자는 단순하게 사회의 경종이 아니라, 왜 우리 사회의 모든 지표가 하락세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살생부(殺生簿 : 죽이고 살릴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은 명부)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심각해졌을까? 사실 우리 모두가 그 답을 알고 있다. 바로 '미래'가 없다는 것,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것만 가지고 삶을 포기하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로 사회의 쓰나미에 삼켜지게 한 결과가 이 자살률인데, 아직도 사회에서는 적자생존, 강자존을 제시한다. 그게 올바른 어른의 양육 방식인가? 사회가 자행한 공공연한 살인은 아직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 연금이라는 기초 생활 보장 수단도 고갈로 이른다는 절망적인 뉴스가 들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경쟁하고 쟁취해서 '더 내고 더 받기'를 택했다. 그게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뻔하디 뻔하다.
위에서 자살률 = 멸망률이라고 했다. 이 멸망률을 쉽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출산율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말하자면 입만 아프지만, 같은 사이트 최신 자료로는 홍콩과 비슷한 글로벌 꼴찌 수준이다. 즉, 우리나라는 객관적으로 곧 멸망한다. 그렇다면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이 초읽기에 대항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안정적인 해외로 가서 사는 게 가장 쉬운 해결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이상적인 조건이 갖춰지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우리는 살아나가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서론의 직업의식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사회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소명을 가지고 사명을 해내면 된다. 비록 이 두 단어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의 올바른 작동법은 오히려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의 풍파를 겪으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고초를 겪는다. 이것들을 내가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모든 문제의 컨트롤 타워가 되어 미친 듯이 전두지휘해서 앞길을 나아가야 한다면 쉽게 번아웃이 올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소명(calling)' 해주셨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이런 일들이 모두 나를 위한 준비물이면서 이 모든 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닥친 일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주어지는 것이 사명이다. 부름을 받았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사명이다. 사명은 개인적인 소망을 담아도 된다. 그 선택이 곧 스스로의 '희망'이 될 테니까. 사명은 거창할 것 없이 '베풀고 싶은 무언가'를 적어내면 된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 기본적인 사회의 심부름은 마쳤다고 생각한다. 아직 애송이라고도 생각이 되지만, 그러면서 느낀 점은 '미리 나를 더 알고 사회에 나갈 수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었고, 이 생각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까지 이어졌다.
이런 내용을 보고 와닿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만 관점을 확장하면 놓치던 가능성을 볼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생각과 관점은 각자의 세계이다.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것이 세상이라면, 내가 온전히 견뎌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극과 극으로 바뀐다. 여러분도 스스로의 생각과 관점을 잘 이용해서 스마트하게 살아나가는 지혜로운 소명자가 되길 바란다.
앞으로 'what(무엇)'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지 보다는 'how(어떤)' 일을 하는지를 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