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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29. 2023

식사, 생존 둘의 밀착관계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서평

 살아있는 존재라면 먹어야 산다. 평생 먹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식사란 곧 생존이고, 이는 육체적인 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경제적이거나 심적이거나 조금 풍요로워지면 당장 조금 더 맛있는 것을 찾는다. 미식을 즐기는 사람은 꽤나 많다. 이런 주장에 반례로 소식가를 뽑을 수도 있지만, 그들도 사실 아무거나 먹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맛있다고 일컫지 못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금만 먹을 뿐이다.  


 이처럼 식사는 육체적인 생존에서 더 나아가 영적인 생존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먹기 위해 산다.’라는 일차원적인 문장에 많은 것은 함축돼 있다. 먹는 행위는 순수하고 기본적인 쾌락, 즉 인간이 근본적으로 살아가는 이유 중 조그마한 부분을 충족한다. 우리는 수많은 종류의 쾌락을 향유하며 살아간다. 그것을 위해 산다고 한다면, 나름 타당한 근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현호정 작가님의 ‘연필 샌드위치’는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병치해, 먹는 행위와 생존을 엮은 작품이다.


꿈에 연필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것이 꿈의 규칙이었다. p293


 ‘은정’은 꿈속에서 불가항력인 규칙에 의해 연필로 만든 샌드위치라는 기괴한 음식을 먹는다. 우걱우걱 씹으며 맛을 표현하는 ‘은정’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강제력에 의한 행동이어도 의견 표출까지 억제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왜 하필 연필인지에 대한 의문이 꽃필 수 있다. 연필은 보통 나무와 흑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기본적으로 먹는 제품이 아니다. 


 연필은 무엇인가를 작성할 때 제 용도에 맞게 사용했다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연필을 통해 작성, 기록 등을 하는 행위는 그것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일종의 연결고리라고 볼 수 있다.


 ‘은정’은 연필을 씹어 먹으며 스스로 연결고리를 통해 연결하고자 했던 것들과 동화한다. 이는 소설 내에 나오는 꿈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투쟁은 겪어야 할 고문의 종류와 시간을 늘릴 뿐이다. p295


 ‘은정’은 순응한다. 반쯤 포기한 태도로 연필 샌드위치를 씹어 먹는다. 이때 ‘은정’은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은정’이 비상식적인 식사를 억압적으로 하는 이유도, 어쩌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늘 합리적이기만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통증이 빛났다 사라지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가지고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통증도 스스로 그것을 바란다. p300


 ‘은정’은 덤덤히 악몽을 받아들이며, 아무 일 없는 듯 깨어나기를, 동시에 악몽을 꾼 현실 속 원인조차 사라지기를 소망한다. 가능, 불가능 여부를 따질 만큼 논리적인 생각은 할 수 없다. ‘은정’은 지금 꿈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뒤 눈에 보이는 탯줄은 절단했지만 어떤 영적인 탯줄 같은 건 잘리지 않고 남아 있어서 그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거였다. p304


 ‘은정’은 폭력적이기까지 한 식사를 멈추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마치 자신이 ‘엄마’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기이한 생각은 ‘은정’을 압박하기도 한다.


… 나는 구토했다. ‘신문지로 닦으면 될 텐데.’ 구토하며 나는 생각했다. 축축한 연필 조각들을 밟으며 또다시 우르르 누군가 밀려들어오고 밀려나갔다. p307


 ‘은정’은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모든 가능성이 될 수 있는 상징적 물체인 연필을 억지로 입에 구겨 넣으며, 생존을 위한 식사를 지속했다. 이런 악몽은 단순 가족 관계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덤덤히 구토한 연필을 치우며, 그 괴로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은 ‘은정’은 어느덧 익숙해 보인다. 아니, 사실 아직 ‘은정’은 혼란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삶이란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이다.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고 영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며, 무엇을 원동력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독자 스스로 질문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지금 당장 억지로 씹어 삼키고 있는 연필 샌드위치는 무엇인지 말이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작가 : 함윤이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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