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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29. 2023

기적은 하나의 도구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서평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하며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일이다. 비일상적인 요소가 우리 일상에 난입해서 펼쳐지는 벌어질 사건들은 무료한 삶에 조미료가 될 수 있다.


 불가능해야 한다. 가능할 법한, 지금은 가능한 정도 일이 아니어야 그 가치가 더 빛난다.


 우리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닐 수 없다. 만약 나중 시간이 더 지나 1인용 날아다니는 오토바이가 빗자루 모양으로 나온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마법 빗자루라 말하지 않는다. 그 최신 과학의 산물에는 낭만이 배제돼 있다.


 마법은 낭만, 기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삶에 감칠맛을 내는 훌륭한 재료라는 점이다. 불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하나의 도구로써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함윤이 작가님의 ‘자개장의 용도’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작품의 의도를 끌어낸다. 


자개장은 우리 모두의 비밀이자 보물이었고 그 자체로 근사한 가구였다. … 자개장을 잠깐 빌려주려고 해. p250


 ‘자개장의 용도’에 나오는 자개장은 일반적인 가구가 아니다. 그 공간에 들어가면 사용자를 염원하는 다른 공간으로 전이해 주는, 정말 마법적인 힘이 깃든 도구다.


 자개장은 본디 증조할머니부터 개인에게만 허락된 물건이었지만, 양도 받은 ‘엄마’가 본인의 권위로 가족에게까지 사용 권한을 공유해줬다. 


 편도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가족은 용이하게 사용했다. 전날 과음을 해도 지각하지 않고, 편도 여행경비는 아낄 수 있는 등 가족은 사회적 규범 내에서 이용한 듯 보인다.


 이런 유용한 도구는, 다시 ‘엄마’가 개입해 자신의 딸, ‘나’에게 귀속된다. 지방에 거주중이지만, 수도권 대학에 ‘나’를 위한 기간한정 대여인 것이다.


나는 언제든 이 모두를 떠날 수 있지만 누구도 그걸 모른다. 이만큼 커다란 비밀을 갖는 건 뒷덜미가 서늘해질 정도로 멋진 일이었다. p253


 갓 스무 살인 ‘나’에게 이런 비밀은 더할 나위 없는 자랑거리다. 이런 비밀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깨가 으쓱 대는, 그런 일이다.


 사실 이때부터 독자는 알 수 있다. ‘나’는 비범하지 않은 범인이고, 감당하기 큰 무엇인가를 홀로 차지하고 있을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문제들, 소설의 주요 요소 중 하나라 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 말이다. 


 ‘엄마’는 ‘나’를 믿고 자개장을 넘겼으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이미 가족까지도 자개장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린 ‘나’가 감당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므츠헤타나 페르가나, 혹은 스몰랸 같은 이름들. 그것들은 고향 문방구에서 팔던 다이어리에 맥락 없이 적힌 지명들, 그러니까 베네치아, 파리, 로마 등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한 듯 보였다. p258


 ‘나’에게는 ‘정우’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풋풋한 사랑의 출발점에서 좌절된 대상이라 할 수 도 있고, ‘나’의 성장을 위한 기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정우’가 부러웠다.


 사실 자개장에는 금기가 있었다. 편도만 이용 가능했기에 발생하는 태생적인 금기다. 되돌아올 방법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금기다.


 ‘정우’는 이런 금기 없이, 자개장을 소유한 ‘나’가 가지 못한 곳도 가는 인물이었다. 훌쩍 떠나도 다시 되돌아오면 그만이다. 그 정도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으레 하듯, 비행기를 왕복권으로 끊으면 되는 쉬운 일이다.


 자개장을 소유한 ‘나’에게 이는 어려운 일이다. ‘나’가 활용한 자개장 이용 범위에는 다소 위법한, 금전적 이득을 취한 점이 꽤 나열돼 있다.


 ‘나’는 과한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편도로만 이용하면 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갈 수 있게 허락된 인물이다. 다른 누구의 허락이 아닌, 바로 ‘나’이며 더 파고들면 ‘나’의 경제력이서 비롯된 허락이다.


나는 야비한 사람이 된 것이다. 자개장을 아무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사람이. p265


 ‘나’는 정우에게 자개장의 비밀을 밝히기 직전까지 갔지만, 포기했다. 실패라고 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고, 스스로 ‘나’가 비밀을 ‘정우’에게 밝혔을 때 지을 ‘정우’의 표정과 반응을 상상했을 수도 있다.


 놀라겠지만, ‘나’가 어깨를 으스대며 지켜온 남들은 갖고 있지 않은 귀중하고 대단한 비밀을 처음 알게 된 외부인이 지을 표정은 결코 아니었을 테다. 


홀로 남은 비밀들은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75


 ‘나’는 금기를 깼다. 되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우선 먼 곳을 상상하며 떠나버렸다. 금기를 깨면서 ‘나’ 안에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엄마는 ‘나’에게 자개장 안에 편지가 있다고 전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정우’가 놓고 간 것임을 깨닫는다. 그때, ‘나’는 자개장의 반대 용도를 이해한다.


무언가를 떠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 자개장에는 그런 용도도 있다. p273 


 본작을 읽고 문득 ‘나’는 ‘정우’를 다시 만났는지, 가족과는 화해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비현실적인 소재로 전개됐으나, 안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갓 스무 살이 된, 사회에 당도해 정신적 성장의 출발점에 선 인물이 겪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 더 공감이 갔다.


 우리 일상을 무너뜨리면서 구원해줄 기적이나 낭만, 마법을 바라는 것은 참 어리숙한 일이다. 그런 일은 자개장을 소유하고자 욕심 부렸던 본작 속 ‘나’조차도 하지 않을 발상이다.


 마법, 낭만, 기연, 기적 따위는 모두 도구다. 도구는 사용하는 이에 따라 활용법과 도구 자체 의미 또한 달라진다.


 도구에 휘둘려선 안 된다. 도구는 휘두르라고 있는 것이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작가 : 함윤이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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