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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Feb 13. 2024

13. 전기장판의 요정

(사실은 전기장판 약탈자에 가까운)


우리 집에는 사실 냉장고 요정 외에도 뭐가 많다.

이번에 소개할 요정은…… 전기장판의 요정이다.


전기장판 위에서 녹아내린 고양이


  나는 전기장판에 허리를 따끈하게 지지는 걸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거의 매일 전기장판을 쓴다. 근데 요새는 쓰려고 보면 누가 맨날 벌러덩 누워있다. 전기장판 가득 말이다.

  분명 내 허리 찜질 용도로 산 건데 사용빈도를 보면 거의 바니 거다. 처음에는 반반씩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는데, 가면 갈수록 나를 몰아내고 대자로 누워서 혼자 다 쓴다. 이젠 나랑 조금도 나눠 쓰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전기장판 귀퉁이도 양보하지 않는 바니를 보고 있자면 조금 어이가 없지만 이해가 되긴 한다. 나도 전기장판이 주는 따끈따끈한 행복을 잘 아니까. 특히 추운 겨울에 하는 찜질은 무릉도원 그 자체니까. 나한테는 허리만 겨우 지져주는 미니 전기장판이지만 바니 입장에서 보면 자기 몸만 한 장판이니까. 확실히 바니한테 양보하는 게 효율이 더 좋긴 하다. 전신 온열찜질이 가능하다니, 부럽다.



따끈따끈 고양이


  전기장판 위에 드러누운 바니를 보고 있자면 꼭 잘 구워지다 못해 녹아버린 떡 같다. 한껏 따끈해져서 뱃살이며 볼살이 흘러내린다. 이때 잘 데워진 뱃살을 만져보면 평소보다 더 흐물흐물하고 몰랑하다.


  장판이 안 켜져 있을 때는 따뜻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앉아있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비가 오길 바라며 기우제를 지내는 인간 같기도 하다. 어디서 듣기로, 기우제는 실패 확률이 적다고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비가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라고. 바니도 그렇다. 전기장판이 차가우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누군가 장판을 틀어줄 때까지 그저… 하염없이……. 그러면 찬 매트 위에 동상처럼 앉아있는 바니가 안쓰러워서라도 장판을 틀어주게 된다.


  가끔은 바니가 전기장판 위에 앉아서 나나 엄마에게 뭐라 뭐라 말하기도 하는데, 해석해 보자면 정황 상 '이것 좀 따뜻하게 해 봐라'인 것 같다. 실제로 애웅애웅 난리법석일 때 전기장판 전원을 켜주니까 만족한 것처럼 조용해졌었다. 내년쯤 되면 바니가 알아서 전원도 켜고 타이머도 맞출 것 같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바니야, 전기장판 온도는 꼭 2~3 사이로 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올리면 저온화상 입을지도 모르니까. 타이머는 두 시간으로 해야 해. 다 쓰면 전원 끄는 거 까먹지 말고…….


  가족들은 전기장판을 하나 더 사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하나 더 사면 그것도 바니 소유가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 개를 켜놓으면 그 중간에 냅다 눕겠지. 침대에 누울 때 꼭 중앙에 벌러덩 누워서 내가 누울 곳이 없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꼭 두 배 넓어진 전기장판을 즐길 것이다. 완전 얌체 같다. 그리고 귀엽다.


  날이 따뜻해지면 전기장판은 거들떠도 안 보겠지. 이 풍경도 한 철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겨울이 지나가는 게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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