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획 업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_프롤로그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_프롤로그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전자는 회사가 망했다는 것이고, 후자는 당장은 아니라는 거다.
나는 기획자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회사를 정리할지 기획하는 것이 내 마지막 일이 됐다.
공공문화시설 A를 시에서 위탁받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는 것
이게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고,
A 중 식당 1곳, 식물 공간 1곳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운영하는 것
이게 기획자인 내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A라는 공간을 3년 반 째 운영하고 있고, 그중 내가 일한 건 약 2년이 된다. 외부적인 요인이 갑자기 등장했고, 이젠 정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얼마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는지는 당장 알 순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리해야 하나.
공간은 텅 빈 외형부터 시작해 유리창, 조명, 사람, 콘텐츠, 계약서 등 다양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많은 항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가 된다니. '지금 여기서 뭘 해도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든 일은 기획이다. 정리하는 것도 예외일 순 없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는 시리즈로 주마다 나온다. 마지막 업무의 기록 정도가 되겠다. 회사를 정리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다.
이 시리즈의 끝은 정해져 있다. 지금의 공간을 뒤로하며 걸어 나오는 모습. 하지만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안 간다. 생각보다 싱거울 수도 있고, 많은 갈등에 지쳐 한 발도 내딛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
마지막에 남는 건 후련함일까 아쉬움 가득 담긴 미련일까. 잘 해내고 싶은데 잘 해냄에 끝이 정리라는 게 좀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