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회사의 통보가 시작됐다.
월요일 경영지원팀을 시작으로 홍보팀, 기획팀 순으로 당신이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알렸다. 이야기는 대표가 직접 했다.
끝나는 시점이 같은 사람들은 묶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중 입사한 지 4개월 정도 된 분에게 대표가 (분위기를 살피며) 괜찮냐라고 물었다.
"괜찮냐구요? 안 괜찮은데요?"
카랑카랑하지만 기운이 빠진 듯 한 대답을 들었다. 나도 한숨이 났다.
이쯤 되면 왜 우리 회사가 정리되어야 하는지 궁금할 것 같다. 뭉뚱그려 외부적인 요인이라 했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공공기관 소유의 시설을 대신 기획, 운영해주는 위탁운영 업체다. 일을 주는 갑(공공기관)과 일을 받아하는 을(위탁업체)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물론 우리 회사가 을이다.
앞으로 약 2년의 계약 기간이 남았지만 갑은 모종의 이유로 내보내려고 하고, 우린 그렇게 내몰리듯 정리를 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도 아직 명확한 정리 시점을 결론 내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회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무언가를 확정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회사가 을이지만 을 중에서도 을갑과 을을이 있다. 결국 갑에서 을로, 을에서 을을로 희생이 옮겨간다.
오후 2시. 한창 엉덩이를 붙이고 일하는 시간이다. 오늘 그런 사람은 없어 보인다. 사무실이 텅 비었다.
두 세명이 숨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언뜻 보이거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보이지 않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모두 다른 통보를 받고 있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들과 당장 12월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갈렸다. 그 둘 간의 만남이나 이야기하는 자리는 없다. 모두가 통보받기 전에는 한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아닌 것이다. 조금 더 남아있는 사람이 편할까, 오는 12월로 권고사직 통보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럴까. 아무도 편하지 않을 거다.
내 파트는 나를 포함해 3명으로 나는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파트원 중 한 명은 내년 3월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고 들었다고 한다. 나머지 한 명을 아직 통보 조차 받지 못했다. 그분은 직원 계약이 아닌 용역 계약으로 오는 12월이 계약 만료다. 회사에서 가장 좋은 먹잇감(?)으로 연장이 쉽지 않아 보인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횟수를 줄이는 방법도 제시했지만 먹힐지 모르겠다.(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비용을 줄인다는 것은 내 자존심을 깎는 것과 같은 고통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난 뭐하는 사람일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정리 시점조차 저번 주와 이번 주가 다르다.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무기력하다.
그나저나 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나는 관계가 불편해지는 말은 잘 못하는 편이다.
메모장을 열고 써본다.
<질문 01. 저는 언제까지 여기서 일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