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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현 Apr 08. 2024

뼈 때리는 이야기_14

사(死)의 찬미

죽는다는 것.


생명 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生)의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말(終末)은 계속된 일이나 현상의 맨 끝을 말하는데 종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보통 광범위하게 느껴진다. 지구의 종말이나 생각해봤지 생의 종말을 생각하고 사는 이는 드물다. 종말은 마무리를 의미한다.


죽음은 끝이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모두 사라진다. 우리는 죽음앞에 엄숙하다. 죽음은 슬프고도 무겁다. 가벼운 죽음도 하찮은 죽음도 없다. 또한 우리는 죽음앞에 관대하다. 고인의 살아생전 죗값은 죽음으로 완전히 소멸된다. 더 잘해주지 못했고 더 용서하지 못했음을 그가 떠난 후 비로소 느끼고 후회한다. 고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30년 동안 유일하게 연락이 끊이지 않고 인연을 이어온 친구다. 오후 일정으로 인해 오전에 연락을 받은 후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운전해가는 도중에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경험상 비가 배웅하는 장례식은 슬픔이 배가 된다. 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30년 내내 늘 밝은 모습과 짜증스런 모습만을 보여왔던 친구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에게 마음을 다 드러내었고 가장 짜증을 많이 냈으니 말이다. 망자(亡者)의 죽음도 안타까웠거니와 친구가 감당할 슬픔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30킬로가 채 안 되었지만 이날따라 무척 멀게 느껴졌다. 눈물훔치고 장례식장으로 들어다. 안쪽에서 나를 발견한 친구는 한 손을 들며 반갑게 맞이했다. 고인에게 예를 갖추고 상주들과 인사를 한 후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구를 마주하고 술을 한잔 받으며 한마디 건넸다.


"속상하재?"

"괜찮다..."

"... 괜찮기는..."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절로 눈물이 났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감춰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인의 죽음보다 아버지를 잃은 친구의 상실감을 앞서 느낄 수 있었기에 마음이 더 아파왔다. 눈가가 뜨거웠다. 친구 앞에서 난생처음 흘리는 눈물이다.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으며 말을 건넸다.


"암만 그래도 부모가 없는거 보다야 있는기 낫재?"

"글치 뭐..."


둘은 잠시 동안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없이 있었다.


"운구는?"

"내일 아침에 온나."

"몇시고?"

"10시"

"알았다."


마침 친구의 부인과 세 딸이 자리에 왔고 아이들을 핑계삼아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다음 날 아침.

전날 약속의 후유증으로 인해 피곤한 심신을 온천 목욕으로 달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인에게 마지막 제사를 지낸 후 말없이 운구를 하고 장지로 이동해 말없이 고인을 땅에 묻었다. 장례식 도중 '아이고 아이고'하며 간간히 들려오는 곡소리가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80년 넘게 살아온 인생에 비해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중간중간 고인의 가족들은 눈물을 쏟았고 곁에 함께 한 지인들은 먼 산만 바라보았다. 산 중턱 굽이굽이 수많은 묘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 땅에는 산사람보다 사자(死者)가 더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공원묘지 아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 친구가 한마디 건넨다.


"고맙다."

"욕봤다. 연락하자."


며칠 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들(아이들)하고 밥 한번 묵자."

"언제?"

"다음 주?"

"그래. 약속 잡을게."


그렇게 나는 다음 주 약속을 잡았다.


<공지> *** 부친상 후 식사자리

일시: 2024-04-**일 19시

장소: ***

참석인원: 5명 (홍길동 김철수 이영희 김갑돌 박아무개)


부친상에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마치려면 아직 한 주 남았다.

고인을 떠나보낸 후에도 그렇게 산자의 시간은 계속된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

산자의 말만 허공에 맴돈다. 살아생전 얼마나 아팠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 어찌되었고 어찌 살았다느니 하는 말들이 고인을 배웅하는 장례식장에서야 산자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고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산자로 인해 한 자리의 주인공으로 자리한다. 고인이 살아생전 우리는 그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삶에 지대(至大)한 관심을 가질 뿐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크고도 다양하다. 죽음 이후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척이나 많음을 우리는 소중한 이의 죽음을 접한 후에야 비로소 느낀다. 시간의 유한함과 인연의 소중함, 그리고 삶의 의미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대비(對備)하며 살아간다고 하나 사실은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작은 효용을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어리석음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우리는 죽음 앞에 숙연해지고 우리는 죽음 앞에 성숙해진다.

지금은 주위의 죽음을 바라보며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를 보다 후회없이 살아야 할 시기다.


내가 죽고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할까?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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