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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현 Sep 13. 2024

부모와 자식 사이

스무 살의 너에게

부모와 형제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천륜(天倫)이라 한다. 천륜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니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하고도 마땅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늘 도리(道理)를 지키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비혼주의자가 많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자식은 몸만 성하면 누구나 낳을 수 있다. 심지어는 몸이 성하지 않아도 자식을 낳아서 잘 기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다. 열 달 동안 잉태하여 산고(産苦)를 겪은 후 힘들게 낳았으면 잘 길러야 한다. 그런데 간혹 자식을 낳고도 기르지 않고 버리는 어미가 있다. 반대로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식을 입양해서 키우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내려보냈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야말로 신이 보람을 느낄만한 존재다.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부모의 의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낳았으면 책임지고 잘 길러야 한다.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을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당연한 말이다.     


내가 좋아서 낳은 자식이니 낳았으면 마땅히 잘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어디 가서 자식 키운다고 유세할 필요도 없다. 낳았으니 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을 공치사(功致辭)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식이 어릴 적에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 아이가 다치지 않게 안전하게 돌보는 일, 춥지도 덥지도 않게 돌보고, 자식을 늘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부모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마땅한 돌봄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버림받은 아이를 입양해서 누구보다 잘 키우는 부모를 내 주위에서 종종 봐왔다. 입양가족 모임에 강의를 하러 가서 그들을 보며 많은 교훈을 얻었고 또 많은 반성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당연함이 무척이나 특별한 일이다. 자식을 낳은 후 방임(放任)하고 유기하는 것은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이다. 낳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좋아서 낳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패륜(悖倫)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못하는 것만 패륜이 아니다.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도 자식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짓이다. 패륜을 저지른 사람은 부모나 자식이나 그에 따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대가를 반드시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당연히 하되 고마움을 바라지말고, 고마워하되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식의 효는 어릴 적 부모에게 지어준 예쁜 미소만으로 그것을 다한 것이고, 부모의 도리는 자식을 낳아서 잘 길러준 것으로 다한 것이다. 그 이상은 서로에게 바라지 말아야 한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좋지 않은 것은 잊어야 한다. 하지만 좋은 것은 이내 잊어버리고 좋지 않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럼 결국에는 본인만 힘들어진다. 자식이라고 부모에게 서운한 것이 없겠으며 부모라고 자식에게 서운한 것이 없겠는가.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이니 손해 볼 것도 없고, 아까울 것도 없다. 그냥 할 수 있을 만큼 더 아끼고 더 나누고 더 사랑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살다가 시간이 지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더 못 해준 아쉬움에 애통해하지도 말고 먼저 간다고 애간장이 끊어지게 통곡할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슬픈 일이기는 하나 사람이 만나 헤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죽은 후 만날 수 없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비슷하다. 헤어짐을 육체적인 헤어짐과 정신적인 헤어짐으로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이고, 그 헤어짐이 지속되어 아주 오랫동안 못 보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 어딘가에 살아있어도 평생 안 보고 살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실천하기 싫거나 실천하지 않는 그 게으름을 부모의 죽음을 접했을 때 눈물로 대신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척이나 비겁하고도 부끄러운 짓이다. 그때 가서 눈물 한 방울 덜 흘리고 지금 조금 더 잘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이 사람이지만 힘들기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이라면 가치 없는 쉬운 일보다 조금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 사랑의 깊이가 깊을수록 고통의 깊이도 깊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그렇다. 살아가며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조금만 더 노력하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내 자식에게 바라는 것을 내 부모에게 하면 된다. 설령 내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도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자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지금부터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내가 부모를 보고 자랐듯 내 자식도 본 대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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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석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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