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시계, 그리고 내게 남겨진 소중한 일들의 횟수
제가 10여 년 전에 학습코칭 일을 할 때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강의하던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는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요,
모르는 분을 위해서 대략의 내용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 인생을 하루로 가정하고 이것을 24시간의 시계로 옮겨 보는 것입니다.
평균 수명을 기본 80세로 잡고 이를 24로 나누어 계산해 보면 1년은 18분에 해당하게 됩니다.
이걸 가지고 '지금의 내 나이는 하루 중 몇 시쯤을 가리키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거죠.
저의 경우에는 10년 전에는 갓 40이 되었으니 시간은 절반인 낮 12시, 정오였겠네요.
지금은 180분이 더 지나갔으니 오후 세 시정도가 되었나 봅니다.
원래 이 내용은 그 당시에는
'인생은 길고 이제부터라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 인생을 꾸며나가자'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강의시간에 이런 멘트로 활동을 마무리하곤 했던 게 기억납니다.
“여러분의 인생 시계는 몇 시인가요? 오후 두 시라면 이제 막 오후의 일과를 바삐 시작했을 때입니다. 저녁 여섯 시라고요? 그렇다면 슬슬 퇴근해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늦은 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이군요. 지금이 늦었다는 생각은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주 긴 오늘 하루를 충분히 즐기며 보낼 수 있답니다. 무엇을 시작하던지 나에게는 지금이 가장 많은 시간이 있을 때입니다.”
물론 저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백 세 시대가 예삿일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이제 50대가 되었다는 것은 인생으로 보면 반밖에 안 온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남은 시간이 충분히 부족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성취하거나 도전하기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말이죠.
그러나 인생시계를 계산하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한편으로는 시간만이 문제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팀 어빈이라는 사람이 쓴 <The End>라는 글을 보면 인생시계와는 다른 관점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나를 대입해서 적용해 보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 인생을 90년으로 가정하면 이제 50이 된 저에게는 4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겠네요.
해마다 피는 벚꽃을 40번 더 볼 수가 있을 거고,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은 열 번을 더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아주 어릴 적 박정희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11명의 대통령을 보며 살아왔는데, 앞으로 8명을 더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독서량은 1년에 7권 정도라고 하니, 남은 인생 동안 이 상태라면 읽을 수 있는 책은 단지 280권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조금 아쉬워집니다.
평균 독서량보다는 아주 조금 더 많이 보는 편이지만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정작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렇게 시간에 비례해서 양이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팀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내 인생에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의 93%를 이미 써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을 뵌다고 하면
제 어머니는 지금 82세이시니 90 평생을 가정한다면 앞으로 고작 96번 밖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1년 중 명절에 두어 차례만 부모님을 만나는 이라면
그 횟수는 16번으로 줄어듭니다.
앞으로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게 고작 16번이라니.. 갑자기 슬퍼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또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부모님 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말이죠.
생각해보니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생일 때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 겨우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따지고 보면 아내와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횟수도 고작 40번 정도 밖에는 안 남은 것이죠.
인생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충분히 길고,
그것은 현재 내가 10대이건 30대이건 60대이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제껏 소중한 것을 등한시해왔다면
남은 날이 얼마이건 간에 앞으로도 몇 번 할 기회가 없게 됩니다.
50년 동안 충분히 많이 했던 것들 말고
앞으로의 수십 년 동안 아무리 해도 부족하게 느껴질 것들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느껴지는 서글프고 아쉬운 감정이
먼 훗날에는 얼마나 더 안타깝고 사무칠 것인지가
어렴풋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