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그리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술 한잔은 언제나 좋다. 매일 같이 옆에 있는 내 짝꿍 남편, 꽤나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까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술 한 잔은 언제나 옳다.
술을 처음 마셔본 건 부끄럽지만 중학교 때였다.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동네 슈퍼마켓에서 학생에게도 술을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 없이 소주를 한 병 구매했다. (무려 15년도 더 된 이야기이니 가능한 것이다.) 이후 얼마나 어떻게 마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용감하게도 술 냄새와 함께 헤롱 거리며 집에 돌아왔고, 엄마는 당연히 어설픈 일탈을 알아차렸다. 나는 매서운 등짝 스매싱을 맞는 둥 마는 둥 그냥 쿨쿨 곯아떨어졌다.
그 다음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 생일에 동네 노래방에서 맥주와 소주를 마셨는데, 주량이 뭔지, 맥주와 소주가 어떻게 다른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역시나 되는대로 마셨고 보기 좋게 취했다. 지금껏 인생에서 그렇게 취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많이 취했었는데, 더 민망한 건 그때의 일들이 기억이 다 난다는 것이다. 차라리 잊었으면 좋으련만. 그 당시 나를 집에 데려다줬던 친구들에겐..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감사하다. 울 엄만 그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상초월 기절초풍이라며 늘 황당해하신다.
서른 살을 넘은 지금은 술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처럼 많이 마시지도 않고, 나의 주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잘 안다.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서 쉽게 얼굴이 빨개지는 나의 건강 상태도 인지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게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짠'은 멈출 수가 없다. 십 년 후의 내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혀를 끌끌 차려나?
지금은 시원한 맥주, 그 처음 한 모금 정도가 참 좋다. 아니면 남편과 함께 부딪히는 맑은 소주 잔의 짠 소리가.
묵혀둔 피로가 씻기고 고민거리가 날아가는 듯한 시원한 술 한 잔으로 한 주의 고민거리를 날려본다. 술 한 잔 정도로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는 고민만 있음에 되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이렇게 털어내도 좋다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