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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리 Mar 08. 2023

합법적 단기 해외 체류

물 밖의 고민은 내려놓는 시간

나는 매주 이틀 정도 해외에 체류한다. 짧아도 꼭 시간을 내서 간다. 휴대폰을 꺼두고, 나에게 집중하며,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단기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다시 힘차게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오늘도 짐을 싼다. 나의 해외는 바로 수영장이다.


수영은 해외여행과 닮은 점이 많다. 스마트폰은 락커에 두고 오니 연락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몸 담은 물에 집중하느라 물 바깥 일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내 마음에 따라 격하게 돌 수도 있고, 여유롭게 떠있을 수도 있다.


물론 종종 마음대로 뜨거나 가라앉지 않고, 더 빠르게 혹은 더 오래 헤엄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여행도 마찬가지 아닌가. 계획은 내 마음이고 어느 정도 지켜지지만 세상이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허락해주진 않으니까.


이러나저러나 국내의 골치 아픈 걱정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해방되는 점이 해외여행의 묘미 아닌가? 수영은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오로지 물과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래서 수영이 좋다.



무거운 근심은 수영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현실에 뿌리 박힌 감정도 물에는 희석된다. 그저 몸의 움직임을 느끼고, 호흡을 조절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과 대화한다. 나와 물만이 전부인 세상이다.




어떤 영상에서 '내려놓음의 중요성'을 봤다. 작은 물컵을 든 남자가 말했다.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계속 들고 있으면 손이 저려오고, 나중엔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라도 좋으니 내려놓으세요.'


크든 작든 걱정거리를 계속 붙들고 있다 보면 진척 없이 괴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다른 곳에 주의를 돌려야 불현듯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수영은 내려놓는 것을 도와준다. 여기에 운동까지 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수영장이 도피처는 아니다. 현실의 문제에서 도망치기 위해 수영장에 간 적은 없다. 무엇보다 수영장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을 때 수영장에 다녀와서 나아진 적은 꽤 많다.


문제라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던 와중에 물을 만나면 잠시 잊을 수 있는 틈이 생긴다. 그 틈새로 들어온 물이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헹궈주는지, 머리를 말리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 만난 문제는 때때로 가벼워지고, 가끔은 사라지며, 어쩔 땐 오히려 좋은 일이 된다.


어떤 것도 계속 들고 있는다고 가벼워지지 않는다. 때로는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어보면 ‘원래 이렇게 가벼웠나?’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 수영에는 그 기능이 있다. 강제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기. 이것만으로도 수영은 현대인에게 아주 좋은 여행이다. 합법적 단기 해외 체류, 그 경험이 궁금하다면 수영장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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