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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리 May 22. 2023

나만의 속도로 간다는 것

레인에서, 도로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이제는 직장 동료가 된 옛 스승님의 차를 탔다. 일 년 전, 수영장에서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지금 같은 수영장에서 나와 함께 라이프 가드로 근무하신다. 선생님이 퇴근길에 호의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우리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귀가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내 주의를 끈 것은 선생님의 운전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을 가진 주제에 더 눈이 간다고, 요즘 들어 운전 연습을 하느라 그녀의 운전 방식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제한 속도 60km/h 도로의 1차선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60km로 달리셨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몇 대의 차가 2차선에서 우리 앞으로 넘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였다면 벌써 속으로 '그래, 내가 답답하다는 거지? 후, 내가 너무 느리게 가는 건가?'라고 마구 중얼거렸을 테다. 늘 도로 위에서 속도에 압박감을 느끼던 나로선 선생님의 운전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생님은 편안하게 제자와의 대화를 즐겼고, 차는 부드럽고 고집스럽게 스스로 편한 속도로 달렸다. 선생님이 한 번 더 멋져 보이는 날이었다.


규정 속도에 맞춰 가는 답답한 사람이 어딨어?
감시 카메라 없는 데선 그냥 가는 거지.


어디선가 들은 말이었고, 어느새 내 안에 내재된 말이기도 했다. 나는 답답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다른 차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제법 타의적인 이유로 속도를 냈다. 사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고속도로 외 도로에서는 1차선이 추월차선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차선에서든 정속주행을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초보인 나는 일반 도로에서도 앞 차가 더 빠르게 달려 거리가 벌어지면 내가 늦은 것만 같아서 계기판의 선을 넘기며 밟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속도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도 아니었다.


운전 경력이 적은 만큼 사고가 난 적은 없지만, 나의 운전 스승님인 아빠에게 내 운전은 '늘 급하다'는 말을 듣는다. 인정한다. 나는 운전할 때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진다. '도로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했던 아빠는 '답답한 차가 알아서 먼저 가는 거다'라는 말도 해주셨다. 초보에게는 양극단처럼 보이는 법칙을 동시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나는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으며 목적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그저 목적지에 어서 도착하기만을 바란다. 사실 운전을 하는 이유는 빨리 도착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지만 빠른 도착만이 목적이라면 택시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게 더 나은 방법일지 모다. 아니면 종종 들리는 개그처럼 어제 출발하거나. 그러니 다른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도 내가 직접 운전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기동성을 위해서'다.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참 중요하다. 한 곳에 뿌리를 박고 태어나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식물과 달리, 동물은 이리저리 움직여야만 몸을 보호하고 영양소도 섭취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움직여야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인간에게도 기동성은 평생에 걸쳐 소중한 자질이자 기술이다. 그런데 그 움직임을 즐기지 못한다면? 속도마저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흐름에 따라 우왕좌왕한다면?



수영장 레인에서도 도로 위 자동차들과 비슷한 속도의 법칙이 적용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초급은 시속 5km 이하, 상급은 시속 1km 이상만 사용 가능' 같은 제한 속도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앞사람을 빨리 따라가려고 하고, 뒷사람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한다. 앞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무리하다가 쥐가 나기도 하고, 앞을 못 보고 질주하다가 앞선 발에 채이기도 한다. 앞사람보다 뒷사람이 빨라 발과 손이 닿으면 한쪽이 불쾌해하고 한쪽이 미안해하거나, 양쪽 다 불쾌해하거나 미안해한다. 앞사람이 답답해서 추월하려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충돌 사고가 나기도 하고, 출발하는 사람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레인 사이를 횡단하다 부딪히기도 한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하지만 진정한 수영 고수라면 그 누구와도 부딪힐 일이 없다. 자기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뒤좌우를 살피며 거리를 가늠하고 움직이거나 멈출 수 있다. 앞사람이 느리면 속도를 늦추고, 영 아니올시다 싶으면 레인을 옮겨갈 수 있다. 반대로 앞사람이 저 멀리 있다고 해서 쫓아가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뒤에 사람이 밀려도 내 속도에 자긍심이 있다면 조급해질 것도 없다. 초급에서 초급 속도, 상급에서 상급 속도로 가는데 무어라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에게 맞는 속도를 알고 유지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 적절한 기동력은 수영에서도 운전에서도, 어쩌면 인생에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오늘도 운전을 하고, 내일도 수영을 할 것이다. 나만의 속도를 찾고, 그 속도를 즐기고, 목적지뿐만이 아닌 과정도 즐길 것이다. 부릉부릉, 어푸어푸. 다른 듯 닮은 달리는 소리에서 나는 또 인생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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