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거짓말

by 송이

우리 아빠는 거짓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 무언가 잘못을 했으면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하라고 누누이 가르치셨다. 그런 아빠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될 수 있으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홈스테이 가정에서 머물렀다. 마음씨 좋은 주인 부부를 만나 편안한 환경에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나는 집으로 전화를 거는 시간이 매우 기다려졌다. 특히 내 전화를 매우 반갑게 받아주시는 아빠와의 통화를 늘 기다렸다. 어느 날은 아빠의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빠는 내 목소리 들어서 너무 좋다며 좋아하셨다. 그렇게 나는 매주 아빠와 통화를 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엄마와 아빠는 나를 데리러 공항으로 나오셨다. 나는 엄마 아빠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가 품에 안겼다. 그런데 내가 떠날 때는 너른 품으로 안아주시던 아빠는 얼굴 살이 쏙 빠지고 몸마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아빠가 혹시 어디 아프셨던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빠가 암 수술을 하셨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손이 벌벌 떨렸다.

아빠는 내가 연수를 떠나고 한 달 뒤인 3월에 건강 검진을 하셨는데 그때 위암을 발견하셨다. 그리고 4월에 위 절제 수술을 받으셨고 그 후 몇 달 동안 항암 치료도 받으셨다. 나는 이 사실을 귀국하는 날까지 전혀 몰랐는데 아빠가 절대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당부했다고 했다. 멀리서 공부하는 애 괜히 걱정한다며 엄마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거였다.

아빠는 몸이 아픈 와중에도 나를 먼저 걱정하셨다. 암 수술과 항암 치료로 힘드셨을 텐데, 내 전화를 받으실 때마다 늘 밝은 목소리를 내셨다. 가끔 병실 안에서 전화를 받을 때도 전혀 병원인 걸 티 내지 않으셨다. 모두 내게 거짓말을 해온 6개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 아빠의 수술 소식을 알았을 때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냐며 아빠, 엄마를 원망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 펑펑 쓰면서 몸과 마음 편히 지내다 온 사실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름 방학 때 친구랑 여행 다닌다고 예정에 없던 돈을 더 보내 달라고 징징댔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투정을 부렸는데, 병실에 계실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즐겁고 신나게 여행하는 동안 아빠는 병마와 힘들게 싸우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평생 내게 거짓말 한번 하지 않았던 아빠는 그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땐 미처 몰랐다. 그 하얀 거짓말 속에 아빠의 가장 깊은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걸.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딸의 행복이 아빠의 통증보다 더 컸을 것이다. 그 후 아빠는 3년을 더 고생하시다 우리 곁을 떠나셨다.

정직을 삶의 원칙으로 삼으셨던 아빠가 내게 남긴 단 한 번의 거짓말. 그것은 세상 어떤 진실보다 더 깊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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