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온통 초록에 물들고 싶은 마음에 초록 니트원피스, 유록색바지, 연두 모자, 녹색 티셔츠, 초록 가방을 보는 대로 샀다. 입을 때마다 싱그러운 봄이 나풀거렸고, 신을 때마다 녹음의 여름이 '햇살의 숨구멍'*에서 빛났다. 아직도 초록에 목마른 나는 걸을 때마다 초록을 살핀다. 꼭꼭 숨은 세상의 모든 초록을 내게 물들이고 말리라는 굳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온라인 서핑 중에 반짝이는 초록의 플랫슈즈가 눈에 들어왔다. 냉큼 주문하고 다음 날 새벽, 현관 앞에 도착한 선물. 선연한 초록의 신발 한 켤레.
나는 왜 초록에 마음을 빼앗긴 걸까.
초록은 생명이다. 초록은 새로운 시작이다. 초록과 가까운 모든 색은 봄에 태어난다. 유록색 새순들, 연둣빛 수양버들, 녹색의 풀잎들은 무채색의 겨울을 지우려고 열심히 봄과 조우한다. 누군가의 기쁨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 위해. 위로와 쉼이 되기 위해, 그리고 다시 일어나 세상을 향해 걸어가게 한다. 나를 향한 초록의 힘이다.
이왕이면 초록으로 치장하고 걸어가고 싶었다. 아팠던 시간을 초록이 삼키고 나를 건강하게 뱉어 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걷고 싶었다. 꼬박 일 년,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여름이 내려앉은 숲에 들어선다. 무한의 초록이 더욱 빛나는 길, 초록 신발을 신고 그 길에 서면 나도 이미 초록의 뿌리를 그들에게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친구 재연의 여고 시절, 지은 시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