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나는 무거웠다
위태한 뿌리를 땅 속 깊이 감추고
실핏줄 같은 잔가지를 허공으로 뻗으며
쓸모를 다한 잎과 열매 하나조차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오래 발버둥 쳤다
나무인지 나목인지 혹은 고목인지 명명할 수 없는 나의 인생은 자꾸 무거워졌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훌훌 벗고 빈 몸으로 우뚝
겨울이 된 저 나무처럼
숲으로 갔다
유록의 시간
녹음의 시간
단풍과 갈잎의 시간
한때 충만했으나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
겨울은
듬성듬성 들숨으로
느릿느릿 날숨으로
결빙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흰 눈이 내리면 가지마다 꽃이 피어
반짝이는 꿈을 꾸는 듯 했다
바람이 불면 단숨에 내려온 햇살과 노을이
빈 가지를 물들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순간과 찰나 속에서 오래 빛났다
모두 가졌으나 아무것도 없는 나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모두 가진 나무
우뚝 서서
가벼워졌다가 무거워지고
다시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지는 일이
과연 나의 생에도 가능한 것인지
숲이 내어준 길을 따라
겨울을 꼬박 걸어도 나는 여전히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