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처럼 편안한 아지트를 만나다.
우리에겐 기적이 필요했고 그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영화 '옥자' 중에서-
영영 이 시리즈를 연재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6개월을 다양성 극장에서 일하면서 실제 다양성 극장들의 운영방식과 고민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세상이 변했습니다. 블랙리스트 파동을 겪으며 영화인과 단체들도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었으며 영진위의 문제도 노출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출범되었습니다.
연재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지만 빨리 지방의 극장들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서울과 수도권은 과연 상황이 나은지에 대한 일종의 시즌 2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서두가 길었습니다. 여섯 번째로 다녀간 도시는 대전입니다.
최근 종합터미널을 만들면서 대전은 더욱 활기를 띈 것처럼 보입니다. '복합'이란 단어가 들어가니 어마 무시하다 느껴질 정도죠.
튀김 소보루가 맛있는 빵집이 있고 영화 '변호인'에 송강호 씨가 갔던 중화요릿집도 있습니다.
1993년 대전 엑스포가 개최된 곳은 지금은 좀비 영화에 나올법한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나마 살아있는 곳은 한빛탑과 몇몇 시설들... 다행인 것은 영화 촬영 세트장과 과학 연구소로 탈바꿈할 예정이니 기다려보긴 해야겠죠.
3층에 들어서니 다락방 같은 느낌의 로비가 보입니다.
누군가는 깔끔한 로비가 아니라서 조금은 놀랄지도 모르지만 마치 나만이 아는 아지트 같은 공간을 왔다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저에게는 이런 모습이 좋았습니다.
DVD와 영화서적으로 가득한 벽면에 갓 내린 커피를 팔고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 민지형 씨 모습 뒤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장승미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 곳의 프로그래머이자 소소 유랑극단 협동조합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대전 아트시네마와 인연을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12년이었다고 하네요.
대전 아트시네마가 생겨난 배경도 인상적입니다. 1997년 시네마테크 대전이 생겨났고 전국 시네마테크 연합도 생겨나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다양한 예술영화를 상영하러 여러 곳을 돌며 대괸하게 되었지만 점차 한계에 부딪쳤고 이에 극장의 필요성을 느꼈던 강민구 대표는 2006년 선사 시네마 자리에 극장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건물주의 이전 요청이 있었고 1년이 지난 2007년 지금의 자리에 극장이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곳 역시 옛 동보 극장에 있던 곳을 이용해 만든 자리라고 합니다.
후원회원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객들의 힘으로 극장이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네요.
관객수는 매달 200~300명이 평균 방문하고 있으며 초반 젊은 여성 관객이 중심이었던 극장은 중장년 층의 여상 관객으로 변하는 추세이지만 다양한 관객층이 극장을 찾는다고 합니다. 주로 서정적인 멜로물이 많이 사랑을 받는데 '그을린 사랑'이나 '파리로 가는 길' 등의 작품이 대표적. 이외에도 일본 영화나 시의적절하게 만들어진 다큐물의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앞에 이야기한 다락방 같은 느낌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단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극장의 노후화라고 할 수 있죠. 이 부분에 대해 장승미 프로그래머는 솔직한 생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결국 지원의 문제인데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아닌 하드웨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독립영화관이나 다양성 극장을 지원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극장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영진위과 선정한 영화을 틀어야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셨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대전시와 영진위의 관심이 필요할 텐데 최근 바뀐 정부의 경우에도 새로운 극장을 짓는데만 관심이 많지 옛 극장을 보존하고 지원하는 부분에서는 관심이 덜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예술영화 전용관이 수익이 보장되는 곳은 아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이 장소를 지켜야 하므로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극장이 위태로울 때만 관심을 갖아주는 지자체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죠.
최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가 멀티플렉스 체인 3사로부터 상영을 거절당하자 일부 토종 멀티플렉스와 다양성 상영관에서 '옥자'를 전격 상영하기로 결정한 사건이 벌어졌죠. 이에 대해서는 비록 넷플릭스라는 거대 자본에서 만든 영화지만 작고 소외당한 영화에도 기회를 주자는 것이 다양성 영화를 트는 극장들의 생각이었고 '옥자' 역시 그런 경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전 아트시네마의 앞으로의 계획은 다른 극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냥 그저 잘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물론 꾸준한 프로그램 개발과 각 지역의 시네마테크와의 프로그램 공유도 잊지 않았습니다.
네트워크 기획전을 열고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순회 상영전이 있으며 과학의 도시 대전답게 9월에는 '아티언스 대전'도 꾸준히 진행될 예정이니깐요. 그리고 대전 아트시네마의 행사들과 별개로 영화제작 프로젝트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올해 그들이 만든 영화 '꽃의 왈츠'가 공개된 것처럼 말이죠.
대전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1993년의 대전엑스포의 추억이 없어지는 부분은 아쉽지만 앞서 소개했듯이 엑스포 과학공원단지를 영화 세트장으로 활용하거나 과학 연구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다른 도시들에 비해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부분에서는 부족합니다. 여전히 산업 조례로 영화 장르가 구분되어 있고 로케이션 장소 지원, 투자 등을 도맡아 하는 지역 영상위원회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 영화를 지원하고 다양성 극장을 지원한다는 것이 솔직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의 모습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강릉시는 독립 예술극장 신영을 돕겠다고 나섰고, 창원시는 시네아트 리좀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지자체들이 지역의 독립 영화관과 다양성 극장에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제 지자체와 영진위를 포함한 정부기관이 이들을 도와줄 순서입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설령 하더라도 블랙리스트로 낙인 찍히는 억울한 일도 이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힘들고 다양성 극장과, 독립 영화관, 시네마테크는 나아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울고 웃으며 극장 문을 나서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올 것이 생각됩니다.
아니... 이미 오고 있는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