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버베나 - 꽃의 기도

by 보리

버베나 - 꽃의 기도


덜 깬 바람 속

이 작은 꽃들이

서로를 꼭 붙들고 피는 것은

이별 뒤에도

금세

보고 싶기 때문이다.



빗방울도 나누고

벌, 나비 의자 되어

뜨거운 햇살 속

같은 그림자 속에 앉아

서로의 열을 식힌다.


둥글게 모인 어깨가

간질거려

연신

분홍빛 웃음이 터지고



작은 꽃잎이

이마를 맞대면

하늘 은하수 강물 워로

밝은 별이 흐른다.


멀리 떠난 이를 위해,

희망을 기다리는 이를 위해

수없이 올리는

작은 기도.


너의 평안,

너의 웃음을 위해,


꽃은 여전히 피어나는데

그대 없는 여름날은

너무 길다.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고

붉어진 눈 끝에

눈물이 매달려 먼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났다.

오래 아팠던 아내를 먼저 보내고

매일 사랑의 연가를 쓰고 있는 사람의 글을 읽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투기도 했을 테고,

그 끝에 미안하다는 손길을 내밀 줄 알았으며,

폭풍 같은 어려움 속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고,

낯선 여행 앞에서 설레는 눈빛을 나눴고,

꽃 같은 아이의 재롱에 웃음을 터뜨리고,

장성한 자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을 그 많은 날들.

그 모든 시간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조건 없는 사랑,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지켜낸 약속,

그 시간과 추억이

삶의 뿌리가 되어

내가 누구인지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는

가족

많은 날을 함께 하고도

아직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


이별의 슬픔보다

남겨진 추억이 더 깊고 따뜻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 떠나는 날

감사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재산일 것이다.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이 생에서 품었다면

그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버베나를 심었다.


금세 번져 화단을 덮고

오래도록 피는 그 꽃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마당 고양이 다섯이

화단을 헤집고 다녀

꽃이 점점 시들어갔다.


꽃을 살리고 싶어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다시 살아나 풍성한 꽃망울을 올렸다.

버베나는 오래전부터

가족과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유럽에서는 결혼식 부케와 신방 장식에,

고대 로마 사제들은 신전 바닥을 쓸 때

버베나 가지를 사용했다 한다.


‘비너스의 풀’로 불리며

사랑과 미의 여신에게 바쳐졌고,

성스러운 허브로 여겨

제례와 약용에 쓰였다.

5월부터 10월까지,

반년 넘게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꽃.

지지 않는 가족의 사랑을 닮았다.


버베나 꽃이 동그랗게 어깨를 맞대고 피어있는 모습은

밥상에 둘러않아 웃음꽃을 피우는

화목한 가족의 풍경과 서로를 향한 기도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도 손바닥만 한 기도를 접어

꽃잎 위에 올려두었다.





버베나(Verbena) 꽃말


- 단결

- 가족의 화합

- 기쁨과 즐거움

- 인내

- 치유와 보호

- 사랑을 이루는 힘

- 매혹과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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