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족두리 꽃

by 보리

족두리 꽃



이슬로 꿴 은목걸이

붉은 연지가 발그레 번져

첫날밤의 떨림이

바람 끝에 걸렸다.



하늘과 땅이

계절과 계절이

손을 맞잡은 날,



바람에 흔들리는 홍치마 위로

산새들의 축가가 흐르면

벌 나비 춤추고

꽃잎 끝에는 구름이

축배의 잔을 들고 서 있다.



햇살이 주례가 되어

꽃잎이 차례로 열리면

그 속엔 갓 태어난

인생이 앉아있다.



작은 꽃잎들이

겹겹이 모여 앉아

햇살에 반짝이는 이마 위로

피어나

오늘의 신부는 단 한 송이,

족두리를 쓴 꽃이다.



땅에서 맺은 언약

마음을 지나

하늘에 걸리면



봄을 지나 여름을 입은

신랑이 서있다.


족두리3.jpg





어릴 적, 마을에 혼례가 있는 날이면

온 마을이 축제였다.

지금처럼 금세 끝나는 결혼식이 아니었다.

몇 날 며칠 손님이 오가고,

거나한 축하객들의 인사로 집집마다 떠들썩했다.


잔치국수를 삶는 멸치국물 냄새가

골목과 마당을 가득 메웠다.


아이들은

전과 순대, 잔치국수

달달한 식혜가 쌓인 잔칫집을 기웃거리며

족두리 쓴 새신부가 마을 끝에서 나타나길 기다리며

괜스레 셀레어 뛰어다니곤 했다.


오늘은 광복절

광복 80년

광복둥이 삼촌이 여든이 되신 해


그 막내 삼촌이 결혼하던 날,


오랜 기다림 끝에

고운 족두리를 쓴 신부가 왔고


신랑의 발바닥을 치는

통과의례에

호들갑스러운 삼촌의 엄살로

한껏 흥이 오른 축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밤새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래서 나에게 족두리꽃은

잔칫날 같은 꽃이다.


꽃밭 한편에 변함없이 기다리며

고향을 지키는 꽃이기에

족두리꽃은 혼자서도

기쁜 신부다.




족두리 꽃 꽃말


시기와 질투





족두리꽃 전설


한 청년이 우연히 하늘 선녀의 옷깃을 스쳤고,

선녀는 그 청년을 그리워하며 지상에 내려왔다.

그러나 갈 곳을 잃은 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선녀는 마음 아파하며 자신이 스치던 옷을 벗어 땅으로 던졌다고 한다.

그의 그리움이 깃든 그 옷이 땅 위에 그대로 내려앉아 족두리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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