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능소화

by 보리

능소화

햇살에 익어

붉어진 마음

감추려 할수록

온 세상에 번진다.


하늘을 품은 일이

구름을 덮는 일이


부끄러움과 설렘이

한 줄기에 매달려

바람과 함께

그네를 탄다.


얼굴보다 먼저

붉어진 마음이

돌담을 타고 오르고,


바람이 흔드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오래전 사람이 떠난 빈집,

무너져 내리는 서까래를 타고

능소화가 오른다.


바람이 스치면

발그레

부끄러움과 설렘

능소화의 뺨이 더 깊이 물든다.

주홍빛 치맛폭을 부풀려

바람 그네를 탄다.

능소화는 중국 궁궐에서 주로 심었고,

조선 초기에 우리 땅에 들어와

사대부의 뜰에서만 허락되었고,

상민이 심으면 곤장을 맞을 만큼 ‘양반 꽃’이었다.

‘명예’와 ‘영광’이라는 꽃말을 봐도

권위와 품위를 상징하던 그 기품도

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사람 떠난 빈집을 지키며

세월의 변화를 묵묵히 견딘다.

임금께 닿지 못한 궁녀의 간절함이

전설로 남은 꽃,


바람에 흔들리는 줄기 끝에

매달린

하늘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움을 만났다.




능소화 꽃말


명예

영광

그리운 사람

여인의 사랑

명성을 얻다

은은한 기다림




능소화의 전설

능소화에는 조선시대 궁중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한 궁녀가 임금의 총애를 받았지만, 어느 날 왕의 마음이 변해 그녀를 잊었다.

궁녀는 시름에 잠겨 병이 들어 궁궐의 담장 아래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자리에 붉은 덩굴꽃이 피어 담장을 타고 하늘로 오르더니 마치 왕에게 다시 다가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 꽃을 ‘임금께 바친다’는 뜻의 능소화(凌霄花)라 불렀다고 한다.

‘凌(능)’은 ‘오른다·뛰어넘는다’, ‘霄(소)’는 ‘하늘·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 전설 덕분에 능소화는 ‘높은 사람을 향한 연심’, ‘닿지 못하는 사랑’을 상징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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