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채송화

by 보리

채송화



꽃밭 모서리

누가 보지 않아도

밤새 움츠린 꿈의 조각을 펼치며

온 힘으로 붉게 웃는다.


하늘에 닿지 못해도

하늘을 품을 수 있다는 걸

이 작은 꽃을 알고 있다.



흙을 베고 누운 채

서로 어깨를 맞댄 꽃들에게

붉고 노란 말들을

조곤조곤 피워낸다.



벌이 다녀가고

나비가 두 바퀴 돌다 가고

담장 너머로 고양이가 지나고

여름날을 닮은 너의 웃음은 더 환해지고


가장 낮은 노래로

삶의 기쁨을 노래하며

눈부시지 않아도

사랑은 피어날 수 있다고



바람에 씻긴

말간 웃음으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고향집 마당 끝 화단 맨 앞자리에

언제나 그 자리에

언제나 변함없이

여름을 지키던 꽃


채송화를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동요


꽃밭에서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 같이 살자 그랬죠


어효선(魚孝善) 작사, 권길상(權吉相) 작곡의 이 동요는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다.


많은 아이들이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거나, 이산가족이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시대적 상황이었다.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이라는 구절은, 이전의 평화로운 가족 일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현재는 아버지가 부재한 슬픔이 담겨있다.


작사자 어효선은 실제로 어린 시절,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보며 그들의 상실감에 공감했고, 이를 꽃과 아이의 순수한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곡을 통해 아이들이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희망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란 마음이 담겼다.


전쟁으로 인한 상실"과 "그리움"을 담은 애절한 동요

어느 날, 아버지는 집을 나섰고 돌아오지 않고

꽃은 여전히 피고, 아이는 꽃을 보며 아버지의 손길을 더듬는다.

“꽃 보며 살자, 꽃같이 살자”던 말은 이제 바람결에만 맴돈다.


그래도 꽃은 피었다.


그리움 속에서, 아이는 꽃을 보며 자라고 있었다.

전쟁 이후의 삶에서도 인간다운 존엄과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바람이 담긴 동요처럼 채송화는 일상의 평화, 보통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 말해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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