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달개비 꽃

by 보리

달개비 꽃


별이 남긴

푸른 눈물 두 방울.


세상 다 물들일 것 같은

푸르름.


눈 시려 부르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세상은 크고 요란한데,

진실은 언제나

작고 낮게 속삭인다.


허리를 굽혀

그 눈물에 나를 비춰본다.


낮아지는 법

그리고 빛나는 법.



너 또한,

나 또한,

짧아도 충분히,

덧없어도 아름답게

오늘 하루를 꽃피워야지.





닭 벼슬 닮았다는

파란 벼슬 둘

아래

하얀 입술 하나.

달개비 꽃을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

황동규 시인의 ‘풍장’이라는 시를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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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 58 / 황동규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흔들리면

나비의 턱더듬이 같은 수술!

그 하나에는 작디작은 이슬 방울이 달려 있다

혼처럼 박혀 있는 진노란 암술

그 뒤로 세상 어느 나비보다도 파란 나비!

금방 손끝에서 날 것 같다

그래. 그 흔한 달개비꽃 하나가

이 세상 모든 꽃들의 감촉을 ---

상아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풀잎 끝에서 꼭 한 바퀴 구르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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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 꽃을 들여다보는데

코끼리는 보이지 않고

제인에어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고아로 자라

온갖 시련 속에서도

푸른 열정으로,

하얀 언어로 살아낸 마음.


사랑한 이가 두 눈을 잃었을 때조차

더 푸르게 세상을 바라보며

그 사랑을 선택했던 제인의 얼굴이

꽃 속에 피어 있었다.


짧아도 충분히,

덧없어도 아름답게.


아침에 피어

한낮 햇살에 시들어도,

그 선택은 끝내 아름답다.




꽃말


순정, 짧은 사랑, 추억, 짧은 만남

다른 이름


달개비, 당개비, 닭의 밑풀, 닭의 장풀, 닭의 난 풀, 난 개비풀, 청채(靑菜), 압척초(鴨跖草), 반화(斑花), 수청채(水靑菜) 등 , 새벽에 꽃이 피고 해가 뜨면 금세 시들어버림.

계관초(鷄冠草) : 닭의장풀 '은 ' 닭의 장식(벼슬)과 닮은 풀 '에서 유래된 이름


압척초(押尺草) : 글자 그대로 ‘자를 누르는 풀”이라는 의미. 닭의장풀의 꽃잎 모양이 자(尺)를 누른 듯한 형상인데 오리의 발자국을 닮았다는 뜻.




달개비 전설


옛날에 한마을에 잘 생기고 건장한 두 청년이 살았는데, 둘은 친하기도 하지만 서로 지기 싫어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비슷한 때에 누가 더 예쁜지 가늠하기 힘든 참한 아가씨와 혼인하여 잘 살았는데, 하루는 둘이 별것 아닌 일로 승부를 가리려다 물속으로 들어가서 늦도록 나오지 않았고, 애가 탄 각시들이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고 밤이 깊어 버렸다.


두 각시는 닭장으로 가서 발을 동동 구르며 닭을 깨웠다.

닭이 울면 날이 샐 테고, 그러면 남편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한편, 늦게까지 앙버티던 두 사람은 승부가 나지 않자 그만두고 여느 때처럼 날 새도록 술을 먹고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보니 각시들은 보이지 않고 닭장 옆에 색시들이 입었던 치마 색깔의 파란 꽃이 피었더라는 슬픈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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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는 약 800만 년 전의 백악기 후기부터 진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시간을 꽃이 작다고 잠시 핀다고 무시할 수 있으랴.


짧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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