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딱따구리

by 보리

딱따구리


딱따그르르,

딱그르르,


딱다구리가

벼락맞은 나무의

애벌레가 파먹은 어둠.

속이 비어버린 흉터를 두드린다.



굳어버린 기억의 나이테,

오래된 상처의 옹이를 파내며,

침묵으로 썩어가는 마음을

따그르르, 쪼아댄다.


딱따구리가

두드리는 것은 썩은 나무가 아니라

숲의 심장이다.



버려진 자리에 웅크린

무겁고 깊은 어둠 속에

좌절과 패배,

심지어 내 안의 망설임까지

두드려 흔든다.


수없는 두드림 끝에

상처 입은 나무는 새 구멍을 품고,

그 구멍은 또 다른 둥지가 되어

새 생명을 받아낸다.



묵은 상처가 굳어

숨 막히는 밤에도

살아있자고,

아니 다시 태어나자고,

죽은 나무 위에

생명의 길을 만든다.



절망이 희망의 집이 되고,

상처는 새 날개를 품어.


내 안의 고통의 조각들을

남김없이 쪼아내야만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음을.




숲속을 걷다가

딱따구리가 쪼아낸 나뭇가지 조각이

우수수 떨어져 머리에 맞은적이 있다.


그것이 행복해서 잠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내가 소로우가 되어 월든 호숫가를 걷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걷는일,

딱따구리가 쪼아낸 나뭇조각을 맨발로 밟으며

느끼는 자유로움과 평화,

그것은 소로우가 꿈꾸었던 길이었다.


고요한 숲에서 나는

딱따그르르,

딱따그르르,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딱따구리가 숲의 심장을 두드린다고 생각한다.


벼락 맞아 속이 비어버린 나무,

풀잎에 이는 바람과 물소리까지

상처난 껍질을 두드리며

새 생명의 문을 여는 소리.

상처 난 자리는 둥지가 되고,

버려진 구멍마다 어린새가 태어나 날라갈테니

딱따구리의 소리는

숲이 다시 태어나는 소리다.


딱따구리 1.jpg 딱다구리가 죽은 나무를 쪼아낸 나뭇조각


딱따구리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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