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쑥부쟁이 - 벌개미취
고려 쑥부쟁이
- 벌개미취
누가 너의 이름을 기억할까.
너 떠난 자리마다
풀잎은 바람에 젖고
아픈 땅, 상처 난 시간에
그리움이 데워진다.
광막한 하늘,
황량한 들판에
꿈에서도 가물가물
고향의 꽃이 피면,
흔들리는 그리움
돌아가지 못한 마음이
그 자리에 서있다.
마음이 멍들면
속 깊게 피어나
멀리 와서야
부르는 그 이름,
잊혀진 고향길,
돌아갈 수 없어도
내 마음 구석에
너 하나는 피었더라.
그리움도
병처럼 눌러두면
끝내 꽃이 되는가.
내 안엔 아직
돌아갈 길이 있다
잊지 않으리라,
흙에 묻힌 세월,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서
고향 냄새나는 꽃이 피면,
바람만 스쳐도
눈물이 떨어져
그리워 다시 한번 돌아보는
보랏빛 꽃잎.
아리랑 고개 넘고 넘어
낯선 땅의 모래바람 속에서야
비로소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멀고 먼 이국의 바람 속,
그 꽃은 별빛처럼 흔들리며
떠난 고향을 부른다.
고향은 머나먼 곳,
두만강 물길 너머 있으나
뿌리는 여전히
고향 바람에 닿아있다.
이 꽃을 보거든, 잊지 말라
고려의 들꽃
자줏빛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연보랏빛 꽃잎마다
굽이치는
고향의 바람과 노래를
꽃말
너를 잊지 않으리, 추억
이름
고려쑥부쟁이의 원래 이름은 벌개미취이다.
벌개미취(Aster koraiensis)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벌(벌판) + 개미(잎이 개미를 닮음) + 취(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는 뜻으로 들국화로 부르기도 한다.
벌개미취의 학명 ‘Aster koraiensis Nakai’ 중 속명 ‘Aster’는 희랍어 ‘별’에서 유래했다.
꽃 모양이 별 모양을 닮았다고 이런 속명이 붙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벌개미취를 ‘별개미취’라 부른다.
영어이름은 코리안 데이지(Korean Daisy)로 순수 한국 야생화란 뜻이다.
[ 나라이름 Korea ]
고려는 약 500여 년간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와 활발히 교역하면서 송·요·금, 일본뿐 아니라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들과도 무역이 이루어졌다.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들은 고려를 “Koryo” “Core” 비슷한 발음으로 불렀고 이 명칭이 실크로드와 해상무역을 따라 유럽까지 전해져 후일 Korea라는 국호의 정착하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13세기)와 서양 사서에도 ‘Cauli’, ‘Corea’ 등으로 기록하였으며, 이후 서양인들에게 한반도 전체가 ‘Korea’로 알려졌고,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을 거치면서도 국제적으로는 ‘Korea’가 굳어져 오늘날 국호로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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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 ]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그리스어 ‘흩어짐’에서 온 말이다.
자신의 본래 땅(고향, 조국)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단순한 ‘이주’보다 역사적·정치적·사회적 이유로 강제로 흩어진 집단을 말한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디아스포라(diaspora)는
두만강 물소리 따라
연해주 벌판을 건너고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모래바람 속에 뿌리내린 고려인들이다.
일제강점기(1910~1945) 강제징용, 강제연행 및 생계형 이주로 일본에 정착한 약 80만 명 이상의 재일동포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첫 공식적 이주 이후 미국 본토와 캐나다로 건너간 약 250만 명 이상의 재미동포
일제강점기 청나라 간도 지역 이주에서 시작, 현재 동북 3성(연변 등)에 약 180만 명의 중국 조선족
현재 전 세계 약 700만 명 이상의 재외동포가 살아가는 글로벌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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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1860년대 조선말 대흉년 때, 연해주(러시아 극동)로 농민들의 이주를 시작으로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약 17만 명이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로 강제로 이주하여 현재 CIS 국가 전역에 약 50만 명 이상이 거주하며, ‘고려인’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인 공동체의 민족정체성은 언어(고려말), 생활문화(음식·풍습), 공동체 의식(두레 등)으로 이는 단순한 ‘출신의 흔적’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적 삶 속에서 더욱 굳어진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유라시아에 핀 꽃이 바로 고려 쑥부쟁이이고 고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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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디아스포라인
고려인(연해주·중앙아시아),
재일동포
재미동포
중국 조선족 중
재일동포와 재미동포는 같은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동포’라고 부르고 연해주를 거쳐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을 고려의 풍습과 언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하여 ‘고려인’으로 부르는데, 일제강점기에 청나라인 간도 지역 이주한 사람들만 유독 ‘조선족’이라 부른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정책을 시행하며 56개 민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중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 주민들을 ‘조선족(朝鮮族)이라고 법적으로 규정하였다.
19세기말~일제강점기 초, 조선의 농민과 가난한 백성들이 생계를 위해 두만강·압록강을 넘어 간도와 만주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였고, 한국에서는 흔히 중국 동포 전체를 '조선족'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차별·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으로 일하러 들어온 중국동포 일부가 범죄에 연루되거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낯설고 거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고, 언론에서 ‘조선족 범죄’라는 식으로 보도하며 부정적 낙인을 강화한 측면도 있다.
조선족 내에서도 도시와 농촌, 연해 지역과 내륙 지역, 소득 수준이나 교육 접근성 등에 따라 큰 격차가 존재하지만,
교육 수준이 중국의 평균 이상일뿐 아니라 모범 소수민족(model/minority)’로 인식되어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조선족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모범 자치주'의 칭호를 여러 번 받은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5,200만, 북한인구 약 2,658만 명,
디아스포라로 흩어져서는 700만 명 대략 8,558만 명이 모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일본·미국 등은 ‘외국인’ 신분으로 살았으므로 ‘동포’ 개념으로 불렸고, 러시아는 고려라는 역사적 호칭을 써서 고려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중국이 공식 민족 구분 제도 때문에 조선족이라는 용어가 고착되었다.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어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인 조선족도 중국의 정치적 정책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닌 재미동포, 재일동포처럼 재중동포(在中同胞) 혹은 중국동포로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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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개미취가 전국으로 퍼진 계기]
이 땅의 야생초들이
외래종의 유입에 의한 야생초의 종과 다양성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고려 쑥부쟁이만은 왕성한 번식력과 함께
초여름부터 가을까지(6월에서 10월) 줄기차게 꽃을 피우는 모습이 한민족의 끈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벌개미취가 전국으로 퍼진 계기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두 행사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국토 가꾸기 사업이 벌어졌다.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장은 기왕이면 우리 고유의 꽃으로 도로를 장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경남 지리산 자락에서 벌개미취 씨앗을 얻어 증식했다.
1985년 대관령 싸리재에 벌개미취 무리 5만 본을 처음 대규모로 심었다. 가을이 오자 이 일대는 연보라색 장관을 연출했다.
그 길은 많은 사람이 일부러 찾는 꽃길로 유명해졌다. 이어 강원도 태백시가 1987년부터 벌개미취를 시 외곽 길가 60㎞에 조경화로 심어 적응시키는 데 성공했다. 벌개미취는 해마다 새로 심지 않아도 자연 번식하기 때문에 별다른 관리가 필요 없어서 가로(街路) 조경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벌개미취가 서울시에 대규모 진출한 것은 2013년 봄 355만 가구에 꽃과 나무를 심자는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이 계기였다.
이때 서울 7개 한강시민공원과 안양천·양재천·중랑천 등에 벌개미취 무리 200만 본을 심었다. 이제는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등 벌개미취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전국적으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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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놈]
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 ‘무식한 놈’이라는 시가 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 시 무식한 놈
이 시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감국, 산국 등 비슷한 들국화 종류가 10여 종 가까우니 엇비슷하여 늘 헷갈린다,
시인이 굳이 자탄할 필요도 없는데, 자신과 절교하고 싶다니 시인의 말이 참 맛있다.
우리 꽃 야생화를 볼 때마다 정겹고
더구나 ‘고려’라는 나라이름을 앞에 달고 있는 ‘고려 쑥부쟁이’ 꽃을 보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를 부전공 한 덕분인지,
꽃을 보면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잡고 중언부언 있는 나나 안도현 시인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