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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갈대

by 보리

갈대



그리움이 깊다는 것은

외로운 시간을 오래 견뎠다는 뜻이다.



헝클어진 마음 하나 들고

강둑에 섰을 때,

나는 다시 네 시선에 걸려 넘어졌다.



남아있는 것이 더 아프고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화해하지 못한 이별이

사랑보다 쉬웠던

그날의 우리,



모든 것이 저 강물처럼 흘러가고

텅 빈 마음의 끝에

흐린 호수가 걸려 있다.



익숙한 슬픔과 작별하며,

돌아볼 때마다 사라지는 길 위에서

더는 나를 가두지 않고



마음의 밧줄을 풀어

저 흔들림 속으로 걸어가리라.






갈대가 키를 세운 길 끝에서

오래 묵은 마음 하나 들고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끝내 용서하지 못한 이별도

미루어둔 채

스스로를 달래며 걷던 길.


내 안의 겨울을 보내며

돌아서려던 나를

네가 다시 불러 세웠다.


뒤돌아보지 않으려 했지만,

바람이 어깨를 돌려세웠고

그리움의 무게는 여전히 그대로다.


말없이 떠난 가을 길 위에서,

나를 묶었던 모든 이유를

저문 강물에 띄워 보낸다.





꽃말


깊은 애정

신의, 믿음, 지혜

음악



다른 이름


한자어로 노(蘆) 또는 위(葦)라고 불렀고. 옛 문헌에서는 성장에 따라 갓 생겨난 어린 갈대는 가(葭), 조금 커지면 대가(大葭)라고 불렀다.



갈대에 대하여


갈대의 학명은 Phragmites australis이고 영어로는 common reed라고 부르며, 세계의 온대와 한대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한국 역시 갈대의 자생지로 특정한 한 곳을 원산지로 단정하기 어렵다.


8~9월에 꽃이 피는데, 처음에는 보랏빛을 띠다가 가을이 되면 갈색으로 변하고, 꽃차례의 모습은 갈색의 풍성하고 헝클어진 머리털과 같다.


키가 1~3m까지 자라며, 속이 비어 있는 원형의 줄기는 마디가 있고, 땅속의 뿌리줄기가 길게 뻗어나가면서 번식한다.


갈대 군락은 줄기와 잎이 햇빛을 가려 조류 성장을 막고, 뿌리가 산소를 토양에 공급해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등 강과 하천의 오염수를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갈대와 억새의 차이


갈대: 습지, 갯가, 호수, 강가 등 물기가 많은 곳에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억새: 주로 산이나 들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도 있지만, 산에서 자라는 것은 모두 억새로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갈대와 님프 시링크스 이야기


갈대와 관련된 그리스 신화는 아르카디아의 님프 시링크스(Syrinx) 와 목신 판(Pan)의 이야기다.


숲의 요정인 시링크스는 아르카디아의 강의 신인 라돈(Ladon) 의 딸로 사냥과 순결의 여신인 아르테미스(Artemis)를 따르며 평생 순결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목신인 판은 숲과 들판, 양 떼를 관장하며 호색한 성격으로 님프들을 자주 쫓아다녔다.

판은 아름다운 님프 시링크스에게 반해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구애했다.

하지만 맹세대로 순결을 지키고자 했던 시링크스는 판의 구애를 거절하고 도망쳤다.


시링크스는 판에게 쫓기다가 아버지 라돈의 강가에 이르러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시링크스는 강의 님프들에게 자신을 변신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판이 막 시링크스를 잡으려는 순간, 그녀는 속이 빈 갈대로 변해버린다.


시링크스 대신 갈대 한 움큼을 움켜쥐게 된 판은 실망하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을 때, 그의 숨결이 갈대 사이를 지나며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매료된 판은 그 소리가 그가 사랑하는 시링크스의 슬픈 울부짖음이라고 믿어, 갈대를 잘라 길이를 다르게 맞추고 묶어 최초의 팬파이프를 만든다. 그리고 이 악기에 사랑하는 님프의 이름을 따서 시링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신화는 님프 시링크스가 순결을 지키기 위해 갈대로 변신했고, 그 갈대가 팬파이프가 되어 그녀의 슬프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이라는 작품에서 이 신화를 ‘욕망 → 추격 → 변신 → 예술의 탄생’의 서사로

인간과 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글을 썼다.




신화 속 그림이야기


판(Pan)과 시링크스(Syrinx)


화가: Jean‑François de Troy (프랑스, 1679-1752)

제작 연도: 1722-1724년경.

매체: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J. Paul Getty Museum (로스앤젤레스)

해당 작품은 동작(드로잉)으로, ‘펜던트’(맞붙은 작품) 중 하나로 “Diana and Her Nymphs Bathing” (동일 작가, 같은 기간)와 짝을 이룬다.


그림자료출처 : https://www.getty.edu/art/collection/object/103RFW

- 짧은 그림해설 -


화가 Jean-François de Troy는 오비디우스 ‘변신’의 절정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버지인 강의신 라돈의 품에 안긴 시링크스는 변신 직전의 공포 속에서 판을 바라보고, 주변의 님프들은 두려움에 떨며 불안한 눈빛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갈대를 움켜쥔 판은 욕망과 황홀 사이의 감정에 휩싸여 있고,

부드러운 여인들의 피부와 팬의 어둡고 근육질의 몸통이 배경인 단풍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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