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뀌
여뀌
강둑을 따라 걷던 날,
그때의 우리 그림자가
바람에 눕고 있었다.
당신이 손 담그던 물가,
당신이 입고 있던 안개,
그 모든 것이
마음의 언덕을 스쳐간다.
강둑에 핀 여뀌 꽃이
이제는 나를 닮았다.
사랑이 멈춘 시간,
가을의 서늘한 고백 앞에
나도 그리고 당신도
흘러가되 떠나지 못한 마음으로
강가를 서성인다.
세상의 무게를 견딘 허리는
휘어져
무심하려 애써보지만,
붉은 줄기 끝에서 피어난 건
돌아서는 계절이다.
추억만 헹구다 돌아서는 저녁
물비린내 나는 시간도 멈추고,
이토록 오래된 그리움 위에
분홍빛 추억이 피었다.
비가 그친 뒤, 강둑을 걷노라면
여뀌 꽃이 먼저 피어 있다.
그 여름의 무성함이
수없이 너를 스쳐갔지만
오래된 마음처럼 잔잔히
번진 분홍빛 마음.
사람도, 사랑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다시 피어난다는 것을.
바람도 멈춘 저녁,
물가에 선 여뀌꽃 무리
모든 만남은
돌아오는 길 위에 있다.
개울가 여뀌 꽃이 붉게 번지면
가을은 이미 한 번 다녀간 계절 같다.
그러나 가끔,
햇살이 등을 스치면
추억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자유로움의 물가에서
오래도록 서서 기다린 가을은
코끝을 찡하게 스치며 지나간다.
지나간 마음도, 끝난 계절도,
강가의 풀꽃이 되어
다시 우리 앞에 서 있다.
눈부신 것보다 오래 남는 건,
슬픔을 견딘 빛이다.
꽃말
학업의 마침: 황금빛 가을 들녘의 습지에서 무리 지어 피는 모습에서 가을걷이와 학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와 연관되어 붙여진 꽃말로 추정.
날 생각해 주렴: 어린 시절 소꿉장난으로 여뀌 꽃으로 밥상을 차리던 추억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
이름
한글명 여뀌는 엿귀, 엿귀 또는 엿긔, 엿과에서 유래하고 역귀풀이라고도 전한다. 북부지방과 만주지역 방언으로 역귀, 들여뀌, 버들여뀌, 맵쟁이, 매운 여뀌, 버들번지가 있다.
역귀(逆鬼)'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여뀌의 매운맛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또한 꽃이 줄줄이 얽혀 피는 모습에서 왔다고 한다.
다른 이름
날료(辣蓼), 유료(柳蓼) 요화(蓼花), 수료(水蓼), 택료(澤蓼), 천료(川蓼), 수홍화(水紅花), 홍료자초(紅蓼子草), 뇨화, 개여뀌, 버들여뀌, 맵쟁이 등
속명인 페르시카리아 (Persicaria)는 복숭아 같다(peach-like)는 의미의 희랍어에서 유래.
여뀌에 대하여
린네 박사가 부여한 여뀌의 학명(Persicaria hydropiper)은 복숭아(Persica) 잎을 닮은 잎과 물기(hydro-)가 있는 땅에서 사는 것, 그리고 잎에서 매운맛(-piper)이 나는 식물이란 의미다.
영어명은 Water pepper이며,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습지, 강가, 도랑, 논밭 주변 등 물이 습한 곳에서 흔히 자라며, 교란된 습지 환경에서 특히 잘 번식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등 전 세계 온대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데,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식물로, 외부에서 특정 시기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본래 한반도에 살고 있던 고유종으로 보고 있다.
6~10월에 연한 녹색 또는 연한 홍색의 꽃이 이삭 모양으로 늘어져서 피는데, 잎과 줄기를 씹으면 고추냉이(고추냉이)와 비슷한 톡 쏘는 매운맛이 느껴진다.
이 매운맛 때문에 영어명도 'Water pepper(물후추)'로 불린다.
가축들이 이 매운맛을 싫어하여 여뀌가 자라는 목초지에서는 여뀌를 먹지 않고 남기는 경우가 많다.
효능
지혈, 항균 작용, 혈압 강하, 어혈 제거, 이뇨 작용 등
염료 작물로 재배하였는데 잎을 말려서 옷감이나 실을 남색으로 물들이는 원료로 이용.
전설
옛날 옛적, 달이 밝은 밤이면 도깨비들이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을 홀리곤 했다. 이 도깨비들은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집안에 몰래 들어와 재물을 훔치거나 온갖 짓궂은 장난을 일삼았다.
하루는 한 마을의 지혜로운 어르신이 묘안을 냈다. 귀신과 도깨비는 수를 세는 것을 좋아하고, 해가 뜨면 사라져야 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어르신은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의 집문가에 여뀌꽃을 심으라고 일러주었다.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도깨비들이 내려왔지만, 여뀌 꽃을 발견하고는 홀린 듯 꽃송이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러나 여뀌 꽃은 작은 꽃들이 이삭처럼 수없이 많이 뭉쳐 피어 있어, 도깨비들은 아무리 세어도 그 수를 다 셀 수 없었다. 밤새도록 꽃을 헤아리던 도깨비들은 끝내 해가 뜨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날이 새자마자 황급히 도망쳐야 했다.
이후로 도깨비들은 여뀌 꽃이 심어진 마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설은 여뀌의 잎에서 나는 매운맛이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의 '역귀(逆鬼)'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과도 연결된다.
문헌기록
삼국유사(제2권) 가락국기(駕洛國記) - 김수로왕(金首露王) 즉위 2년(서기 43년) 도읍을 정하면서 “이제 내가 도읍을 정해야겠다.” 고 하면서 “이 땅은 마치 여뀌(蓼) 잎처럼 좁기는 하나 산천이 빼어나고 기이하니 16 나한(十六羅漢)이 머물만한 곳이다.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매 7성(聖)이 머물 만한 곳으로 적합하다. 이 땅에 의탁하여 강토(疆土)를 개척하면 마침내 좋은 곳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김해 땅의 지형에 대하여 묘사한 내용이다.
산가요록(山家要錄) - 민초들의 음식 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온갖 음식을 만드는 데에 여뀌는 깊이 관여하는 전통식물자원으로 나물 반찬의 조미료로 자주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뀌는 염색하거나 음식의 향신료, 약재로 이용하는 등 식물체 전체가 아주 유용한 자원이다.
여뀌풀을 돌로 찌어서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하여 떠오르면 잡기도 하였다.
훈몽자회(訓蒙字會) - 1527년 최초의 한글명칭 엿귀(여뀌)의 기록이 등장한다. 여뀌를 분명하게 채소로 분류해 두고 있다.
▶전설 1) 여뀌는 더러운 물을 정화하고, 잎맥과 반대방향으로 여덟 ‘팔(八)’ 자의 뚜렷한 반점이 있다. 이것을 보고 전설 같은 이야기를 지어 냈다. 여뀌 잎에 새겨진 ‘八’ 자는 8월이 되면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전국에 확산되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해방되었다.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가냘픈 여뀌 잎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전설 2) 여뀌로 중풍을 치료하였다는 옛이야기도 있다. 어느 산촌에 노인이 중풍으로 누워 있었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를 보고 여뀌를 달여 마셔보라고 하였다. 노인은 여뀌 달인 물을 계속 마시는 동안 몸을 기동 하게 되었고 중풍이 치료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뀌의 유래로는 여뀌를 집 주변에 심어놓으면 그 여뀌 알맹이를 세느라 도깨비가 집에 못 들어오게 도깨비를 '엮는다고', '엮이게 한다'라고 여뀌라는 유래가 있다.
출처 : OMATE 시니어(https://www.omate.kr)
옛 시
여뀌꽃과 백로(蓼花白鷺) - 이규보
前灘富魚蝦 앞 여울에 물고기와 새우가 많아
有意劈波入 물결 뚫고 들어갈 생각 있는데
見人忽驚起 사람 보고 문득 놀라 일어나서는
蓼岸還飛集 여뀌꽃 핀 언덕에 도로 날아가 앉았네
翹頸待人歸 목을 빼고 사람이 돌아가길 기다리다
細雨毛衣濕 ⓐ가랑비에 털옷이 다 젖는구나
心猶在灘魚 마음은 여울의 물고기에 있는데
人噵忘機立 사람들은 말하네, 기심(機心)을 잊고 서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