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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첫사랑의 방

by 보리

첫사랑의 방



희끗희끗 앞머리 서리 내린 부장님.

오래 품어온 첫사랑을 만나고 온 날.



열 때마다 벚꽃 휘날리고

닫을 때면 장대비 쏟아지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꽃피고 바람 불던

첫사랑의 방.

그 방이 무너졌다고 애닮아한다.



얼마나 설레며 열던 문인데

호로록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했다.



단발머리 팔랑이는 날은

가슴이 파도쳐 멀미로 울렁이고,

친구와 함께 웃는 모습에

다리가 풀려 한참을 서 있었는데,



강산이 한 번 변하도록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외사랑.

여고 졸업하고 도시로 떠나더니

결혼소식 듣던 날은

하늘이 무너져



잊자, 잊자,

여러 날 술로 달래며

오래오래 생각했었다고

이제는 잊을 거라고

첫사랑의 방문을 잠가보았지만,



벚꽃 날리는 봄바람에도 열리고

단풍지는 가을에도 열리고

열 감기 몸살에도 열리고



좋은 것 보면

맛난 것 먹으면

불쑥불쑥 첫사랑의 방문이

덜컥 열려

눈시울 뜨거워지곤 했다는데,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제 맘대로 열렸다 닫히던 방문에

마침내 빗장이 풀렸다.



첫사랑이 먼저 만나자고

보고싶다고

첫사랑이 서있는 문고리 잡고 맴맴

몇 달을 뒤척이며 맴맴.



만나고는 싶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혹시가 역시가 되어

때로는 무지개로 뜨고

때로는 흔적 없이 무너져

수없이 다시 지었던 그 방이

끝내 사라지고 말았단다.



가슴 한복판,

지하 깊숙이 숨겨둔

분홍빛 첫사랑의 방.



아주아주 오래

그리워했노라고

드문드문 울었고

오래 견디며 건너온 시간인데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면

조금 덜 허무했을까.



첫사랑의 방은

함부로 여는 게 아니라고

나라 잃은 얼굴로

허망해하던 부장님.



건강하시죠?



첫사랑의 방문을 열어볼 때 들으면 좋을 노래

https://youtu.be/_3t1H2lqJxQ?si=HdaNMvEDziiQqyfk




술이 몇 순배가 돌아 다들 얼콰한 회식자리였다.

앞머리 희끗한 부장님이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한 얘기다.


가슴 깊이 숨겨둔 방이 하나 있는데

수십 년 첫사랑을 숨겨두고 살아.

그 방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오래 오래 설명하더니

그 방에 살던 첫사랑이 먼저 연락이 와 만났다며

갑자기 나라를 몇 번이나 팔아먹은 처연한 얼굴이 되었다.


혹시 하면서

오래 망설이다 만났는데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세상에~~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세월에 사람이 그대로 일리 없는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러면서 첫사랑의 방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닫아 두라 한다.

그래야 죽을 때, 그 문을 아름답게 닫고 갈 수 있다 한다.


모두 취한 술자리라

그래도 분홍빛 방이 있어 그 세월만큼 행복하지 않았냐며 부장님의 연심을 놀려먹느라 신났지만

부장님은 정말 나라 잃은 망연한 표정이었다.


당신의 첫사랑 - 장은숙

https://www.youtube.com/watch?v=oc74d2EhsfI


그래서 생각나는 유머


인생 평준화


50대 외모 평준화

- 젊었을 때 예뻐지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다 해도 50대가 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는 외모의 평준화.


60대 학력 평준화

-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그게 그거라는 것


70대 남편 평준화

- 여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남편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무슨 말인지?

80대 경제 평준화

- 돈이 있는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돈이 있어 보았자 나이가 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냐는 뜻이다.


90대 생사 평준화

- 나이 90에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기력이 없어 누워만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미모도, 학력도, 재물도 시간 지나면 모두 평준화된다니, 너무 세상 욕심부리지 말고 살일이다.


그래도 누구라도 연분홍빛 첫사랑의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 살짝 열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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