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B - 2

by 송혜미

지미의 출현은 라지B의 고독한 주장을 완벽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지미의 존재는 순수 인간 XX와 XY가 혼합된 2인 이상의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명백히 선언했다.


때마침 라지B는 당시 소속되어 있던 기업의 파산으로 급작스레 자유 상태에 있었고, 운 좋게 그 어떤 계약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았다. 라지B는 라지B 자신에게 귀속될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순수 인간의 발견을 신고할 의무도 없었다.


이건 기회였다.

라지B는 마음껏 지미를 키웠다. 말그대로 마음껏.


가장 먼저 지미의 표피에 방사능 피폭 예방제를 직접 주입해 비를 맞아도 끄떡없는 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탄과 방음으로 밀폐된 벙커에 꼭꼭 숨기고 지미의 머릿칼 한 올이라도 근처를 팔랑거리며 나부낄까 열심히 청소를 했다.


벙커는 금고였고 지미는 라지B가 유일하게 소유한 자산이었다.


지미가 완전한 성인의 몸을 갖추기 까지 일렉트릭 기타를 연습하도록 했다. 예술을 위해, 표현을 위해, 그가 설립한 에이전시 O의 번영과 보잘 것이 없는 그의 삶을 위해. 미래의 부와 명예, 새로운 소유와 그가 그간 당했던 자율성의 박탈을 세상에 대고 복수하기 위해서.


그는 금으로 개조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지미의 머릿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곤 했다.


지미는 순수 인간의 손가락 근육으로서, 고막으로서, 몸짓으로서 기타를 익혔다. 그렇게 11년을 숨어 지냈다. 니켈 현 6개를 끊임없이 튕기며.


지미가 비로소 순수 인간의 나이로 열 여덟이 되었을 때, 라지B는 본격적인 개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거액을 지불하고 음지의 개조업자에게서 식별자를 새겼다. 열여덟 지미는 2330년에 신인류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라지B는 정식으로 지미의 개조 절차를 밟았다. 성실하고 차근하게. 순수 인간 시절 기타 연주로 단련한 근육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며 순수 인간이 발달시키기 취약한 근육을 한 땀 한 땀 골라내어 교체했다.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위해 각종 관절을 카본 소재로 교체했고 손가락과 손바닥은 티타늄으로 감쌌다. 그의 이마에 한자리 숫자를 기록하던 개조율은 어느새 89%를 기록하고 있었다.


마침내 지미의 내부가 앰프로 개조되었을 때, 라지B는 개조율 97%를 예상했으나 실제 95%에 머물렀다.

라지B는 잠시 분노했지만 곧 평정을 찾았다. 그는 지미를 꼭꼭 숨겨온 세월동안 길러온 인내심을 발휘하여 급할 것은 없다고 여길 수 있었다.


지미의 개조가 시작될 무렵, 나는 2330년 라지B의 에이전시 O에서 철저한 계획 아래 생산되었다. 지미의 ‘포토그래퍼’ 이자 ‘대화 상대’ 로서.


대화 - 상대.


라지B는 대화 상대가 지미를 지미답게 해줄 것이라 설명했다. 알 수 없는 말 속에 나는 잠시간 머물렀다.

‘에이전시 O 소속, 80943089, 개조율 95%, ID: Jimmy – XY – 2330’. 이것 말고 무엇이 지미를 지미답게 한다는 말인가. 알 수 없다. 정말이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순수 인간이란 그런 것일 테다.


라지B는 불안했던 것 같다. 지미와의 계약 조항을 검토하고 또 검토하며 빈틈이 없는지 확인했다. 마치 그가 자신의 소유임을 매 순간 확인하려는 듯. 혹, 라지B는 다른 기업에 이 완벽한 기타리스트를 약탈 당할까 - 그러니까 그 의미는 곧 예술과 표현과 에이전시 O와 보잘것없는 그의 삶, 간단히 말해 그의 전부를 약탈 당할까 –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장 큰 규모의 무대에 가장 시끄러운 소리로 지미의 존재를 공표하면서도 그의 단전에 자리하는 궁극의 진실, 그가 순수 인간 태생 이라는 점을 공고히 숨겼다. 단, 자기자신과 나를 제외하고.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그가 순수 인간 태생이라는 점을 라지B와 나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을까.

라지B가 그를 지키고 싶었더라면 무엇에 주목 했어야 할까.


계약서를 검토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소를 살펴야 한다. 라지B와 같이 계약 조항에만 몰두한다면 빈틈을 놓치기 마련이다. 가령, 계약 당사자 자체가 그 빈틈일 수 있으니 말이다.


바로, ‘Jimmy – XY – 2330’처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기타리스트, 단전에 비밀을 숨긴 기타리스트 지미. 하지만 아무리 멋진 최신식의 안구를 갈아 끼고 계약서를 들여다봐도 라지B는 계약의 빈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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