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엄마의 엄마는 괴로워.

사랑 하지만 괴물엄마가 된 이야기 - 25화

by 한이음



우리 아이들은 생후 100일부터 평일 낮시간동안

나의 엄마이자 그들의 할머니가 키워주기 시작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쌍둥이 아이 둘을 혼자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나는 아직도 제대로 짐작 할 수없다.


처음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키워줄게. 애 키우는 거 쉬워. 너는 일해.”

그 말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곧이어 쌍둥이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망설이던 나에게 엄마는 또 한 번 말했다.
“두 명도 엄마가 볼 수 있어. 너는 그냥 일해.”

그렇게 나는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했다.


내 커리어를 이어가고, 월급을 받고,
그 와중에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편할 줄 알았던 출근길이
왜 점점 불편해졌을까.


주 양육자가 내가 아닌 ‘할머니’라는 사실이 마음 한켠을 계속 건드렸다.
이유식부터 놀이 방식, 생활 루틴까지
신생아 때부터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내 엄마라는 이유로 쉽게 화를 냈고
아이 돌봄에 있어 허술하지 말라는 당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고질병을 얻었다.
무릎 통증, 팔 저림.

병원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고단한 몸으로 아이를 키워준다는 고마움은 있었지만
아이를 앞에 두면 어느새 그 고마움은 사라지고
지적이 먼저 나왔다.




31개월이 된 아이들에게
기저귀 떼기가 내겐 숙제처럼 느껴졌다.


혹시나 늦을까 조바심이 생겼고
주말 동안 내가 있을 때 소변 훈련을 시작해봤다.
다행히 둘째는 “쉬하자”라는 말에 반응했고, 따라와주었다.


그래서 평일 아침에도
아이들 등원 전 ‘쉬하자’ 한 번만 해달라고 엄마에게 부탁드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애들은 때 되면 알아서 가려. 왜 억지로 시키니? 너 있을 때 해.”


그 말에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쉬하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이 스스로 어떻게 소변을 가리라는 걸까?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엄마와 또 언성이 높아졌다.


그날, 아이들은 조용히 귀를 막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출근한 뒤에는 등원 전까지 할머니 혼자서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 상황에서 ‘쉬하자’라는 말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생각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시간을 들이고
조금 더 반복해서 연습시킨다면
아이 스스로 변기에 앉게 될 텐데.


굳이 엄마에게까지 그 부담을 넘기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런데도 왜
‘고마워’, ‘미안해’
그 단어들은 너무 어렵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아이들 앞에 서면 고마움보다 지적이 먼저 튀어나온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일터로 나가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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