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면 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털신.
겨울 산사에 가면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방의 댓돌에 나란히 있는 신.
그리고 시골 노인정에 가도 현관에 빼곡히 있는 신.
그 분들이 이 신을 즐겨 신는 건 값이 싸기 때문이다.
고무신에 약간의 부드러운 털을 덧대고 테두리에 누런 털을 붙여 만든 이 신은 보기와 달리 방한이 잘 되지는 않는다.
밖에 오래 있으면 발바닥부터 시려온다. 재질이 얇은 고무라 그렇다. 금세 닳아 3년 신기도 어렵다.
이 신발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다.
산지 얼마 안 되어 마을 모임에 신고 갔다가 다른 아저씨와 신발이 바뀌었다.
어떤 아저씨가 바꿔 신고 가셨다. 내 신은 새 거였는데. 아쉽게도 이 신은 적어도 2년은 되어 보인다.
일부러 다른 사람의 새 신을 바꿔 신고 가기도 한다는 걸 보면, 새 신을 신고 공공장소에 간 내가 순진했다.
오래 신어서 흙먼지가 스며 닦아도 새 신발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신을 잃어버린게 재밌으신지
송슨상아, 니 그렇게 세상 물정 몰라서 애들을 참 잘 갈키겄다 하고 동네 어르신들이 놀린다.
그 분들의 충고(?)대로 나도 더 나은 걸로 바꿔 신고 오려고 몇 번 마을 모임에 가 봤는데 의외로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털신이 하도 바뀌니까 대부분 시골 할아버지들은 신에 하얀 실로 가위표나 세모표를 꿰매 표식을 하거나 신발 바닥에 검은 매직으로 이름을 써놓은 것이다!
인생도처유상수라더니. 새 털신 잃고 한 수 배웠다.
우리반 애들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혀를 쯧쯧 찬다.
자기 할아부지도 이름을 안 써서 신이 바껴와 할머니한테 욕먹었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타박을 들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잊을만하면 내게 털신 찾았냐고 묻는데 내가 못 찾았다 그러면 쯧쯧 혀를 찬다.
그래도 난 이 신발을 특히 좋아한다. 어릴 적 생각이 나서다.
겨울이면 어머니가 말린 고추를 내다 팔아 이런 모양의 털신을 사 주곤 하셨다.
이걸 신고 눈 위에 나가 발자욱을 찍곤 했다. 여전히 발은 시렸고 발가락이 발갛게 얼곤 했지만, 이 신을 신고 나무하러 산에도 가고 강가 얼음 위에서 썰매도 탔다.
내겐 갑옷 같았다. 그 때도 지금도 이걸 신으면 뭔가 든든하다.
아침이면 화롯불 위에 이 신을 데워 학교에 신고 가곤 했다.
신을 데울 때 항상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그것 마저 정겨웠다.
내가 이 신을 좋아하는 건 어릴적 그 기억들 때문이다. 몇 천원이이면 살 수 있는 가격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겨울이면 어디든 이 신을 신고 다닌다.
학교에도 신고 가고, 서울 출판사에 일 보러 갈 때에도 신고 간다.
아이들은 이 신을 할아버지 신발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들이 주로 신어서 그런가보다.
"선생님도 우리 할아부지랑 똑같은 신발 신었네요, 그거 장에서 샀죠? 얼마 줬어요?"
"7000원 줬어."
"그런데 그거 꺾어서 신으면 뒤꿈치 털 빠져요. 조심하세요."
다른 아이는, 그 신발 신고 뛰어가지 마세요. 훌렁 벗겨져요, 조심하세요. 그리구 아주 추운 날 그거 신으면 발 시리니깐 차라리 털장화 신으세요. 하고 걱정도 해 준다.
도시에선 잘 안 신는 신발이라 그런지, 전철 안에서 날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제법 비싸 보이는 음식점이나 멋진 쇼핑몰에 갈 땐 더하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부모들도 약간 멈칫 한다. 그러면서 선생님도 그런 신 신냐고 웃는다.
그럴 땐 내가 유난을 떠나 싶은 생각을 잠시 한다.
털신을 신은 나를 다르게 판단한다면 잘 못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인식과 맞서려고 일부러 털신 차림으로 도시를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아직은 그냥 좋아서 신을 뿐.
우리반 아이들은 가끔 일부러 내 신발장에서 내 털신을 꺼내 뒤꿈치 쪽의 털이 잘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나더러 꺾어신지 말라고, 털 빠지면 발 시리니깐요 그런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급해도 뒤축을 꺾어신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