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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21. 2016

할아버지 털신



매년 겨울이면 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털신.

겨울 산사에 가면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방의 댓돌에 나란히 있는 신.

그리고 시골 노인정에 가도 현관에 빼곡히 있는 신.

그 분들이 이 신을 즐겨 신는 건 값이 싸기 때문이다.

고무신에 약간의 부드러운 털을 덧대고 테두리에 누런 털을 붙여 만든 이 신은 보기와 달리 방한이 잘 되지는 않는다.

밖에 오래 있으면 발바닥부터 시려온다. 재질이 얇은 고무라 그렇다. 금세 닳아 3년 신기도 어렵다.


이 신발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다.

산지 얼마 안 되어 마을 모임에 신고 갔다가 다른 아저씨와 신발이 바뀌었다.

어떤 아저씨가 바꿔 신고 가셨다. 내 신은 새 거였는데. 아쉽게도 이 신은 적어도 2년은 되어 보인다.

일부러 다른 사람의 새 신을 바꿔 신고 가기도 한다는 걸 보면, 새 신을 신고 공공장소에 간 내가 순진했다.

오래 신어서 흙먼지가 스며 닦아도 새 신발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신을 잃어버린게 재밌으신지

송슨상아, 니 그렇게 세상 물정 몰라서 애들을 참 잘 갈키겄다 하고 동네 어르신들이 놀린다.

그 분들의 충고(?)대로  나도 더 나은 걸로 바꿔 신고 오려고 몇 번 마을 모임에 가 봤는데 의외로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털신이 하도 바뀌니까 대부분 시골 할아버지들은 신에 하얀 실로 가위표나 세모표를 꿰매 표식을 하거나 신발 바닥에 검은 매직으로 이름을 써놓은 것이!

인생도처유상수라더니. 새 털신 잃고 한 수 배웠다.


우리반 애들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혀를 쯧쯧 찬다.

자기 할아부지도 이름을 안 써서 신이 바껴와 할머니한테 욕먹었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타박을 들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잊을만하면 내게 털신 찾았냐고 묻는데 내가 못 찾았다 그러면 쯧쯧 혀를 찬다.


그래도 난 이 신발을 특히 좋아한다. 어릴 적 생각이 나서다.

겨울이면 어머니가 말린 고추를 내다 팔아 이런 모양의 털신을 사 주곤 하셨다.

이걸 신고 눈 위에 나가 발자욱을 찍곤 했다. 여전히 발은 시렸고 발가락이 발갛게 얼곤 했지만, 이 신을 신고 나무하러 산에도 가고 강가 얼음 위에서 썰매도 탔다. 

내겐 갑옷 같았다. 그 때도 지금도 이걸 신으면 뭔가 든든하다.

아침이면 화롯불 위에 이 신을 데워 학교에 신고 가곤 했다. 

신을 데울 때 항상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그것 마저 정겨웠다.

내가 이 신을 좋아하는 건 어릴적 그 기억 때문이다. 몇 천원이이면 살 수 있는 가격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겨울이면 어디든 이 신을 신고 다닌다.

학교에도 신고 가고, 서울 출판사에 일 보러 갈 때에도 신고 간다.

아이들은 이 신을 할아버지 신발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들이 주로 신어서 그런가보다.


"선생님도 우리 할아부지랑 똑같은 신발 신었네요, 그거 장에서 샀죠? 얼마 줬어요?"


"7000원 줬어."


"그런데 그거 꺾어서 신으면 뒤꿈치  털 빠져요. 조심하세요."


다른 아이는, 그 신발 신고 뛰어가지 마세요. 훌렁 벗겨져요, 조심하세요. 그리구 아주 추운 날 그거 신으면 발 시리니깐 차라리 털장화 신으세요. 하고 걱정도 해 준다.



도시에선 잘 안 신는 신발이라 그런지, 전철 안에서 날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제법 비싸 보이는 음식점이나 멋진 쇼핑몰에 갈 땐 더하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부모들도 약간 멈칫 한다. 그러면서 선생님도 그런 신 신냐고 웃는다.

그럴 땐 내가 유난을 떠나 싶은 생각을 잠시 한다.

털신을 신은 나를 다르게 판단한다면 잘 못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인식과 맞서려고 일부러 털신 차림으로 도시를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아직은 그냥 좋아서 신을 뿐.


우리반 아이들은 가끔 일부러 내 신발장에서 내 털신을 꺼내 뒤꿈치 쪽의 털이 잘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나더러 꺾어신지 말라고, 털 빠지면 발 시리니깐요 그런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급해도 뒤축을 꺾어신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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