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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Jul 25. 2021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읽Go: 왜 먹지를 못해?

송블리의 독서아삭 l 김첨지의 삶을 통해본 현대사회의 고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보다는 기, 승, 전, 결이 명확하게 떨어지는 비문학의 글을 더 선호하였다. 주인공들의 시점, 등장인물, 이야기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리 한 소설 분야. 또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보고 들어야 더 재미있고, 빠르게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소설과는 더욱 친해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그 작품이다. 1924년 일제 강점기 시절 발표된, 가난한 인력거꾼의 삶 김첨지의 삶을 그린 소설 <운수 좋은 날>.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평소에는 별다른 소득도 없었던 김첨지가, 이상하게도 비가 오던 어느 날 아침부터 뜻밖의 횡재를 한다. 아픈 아내를 위해, 아내가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설렁탕을 한 그릇 살 수도 있을법한 하루의 시작. 신이 난 김첨지는 그동안 아내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설렁탕 한 그릇 사들고 갈 수 있겠다'라는 기쁨에 잠긴다. 그렇게 하루의 끝에 사랑하는 가족을 향해 집으로 당도한 발걸음. 하지만 이상하게도 집안엔 적막이 흐른다. 설렁탕을 먹어주어야 할 아내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것. 아들 개똥이의 젖 먹는 소리가 그를 반겨줄 뿐이다. 설렁탕을 먹어야 할 아내가, 김첨지가 제일 운수 좋은 날에 세상과 작별하게 되는 소설의 설정. 김첨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말한다. '왜 먹지를 못해.. 오늘은 이상하게 운수가 좋더니만..' 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가난을 비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매슬로우가 말하는 욕구 이론 단계 중, 제일 밑바탕이 되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삶을 살았던 이 가정의 모습을 보면 그 비참함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모처럼의 보너스 날에, 아내가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라. 비록 아내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에 사로잡힐 것이다. 소설에서의 김첨지는 그런 슬픔을 향하여 손짓을 내밀 여유조차 없다. 그는 그저 먹지 못하는 아내를 향해 식어가는 설렁탕과 함께 주저앉아 허탈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시대의 비극이자 비참함이었을 것이다.


 무언가가 완성되고 나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건 우리들의 본능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며,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을 다시 찾아가는 회귀본능처럼. 김첨지가 아내가 제일 먹고 싶어 하는 설렁탕을 그의 아내에게 내어준 것은 단순히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 운수 좋게 잘 풀려서 사랑하는 그녈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들뜬 김첨지의 마음, 달포 째 원인모를 병에 걸린 아내의 위로가 되려고 하는 그의 따뜻함, 개똥이의 엄마이자 자신의 하나뿐인 아내를 위하는 달달함. 그런 것들이 한데 모아져 설렁탕이라는 음식으로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한테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인 것들이 완성된 그날, 보아주는 이가 없어졌을 때의 그 상실감과 허탈함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보며 비가 오는 추적추적 한날, 열심히 그 삶의 하루를 걸었을 김첨지와 집에 기다릴 아내 생각으로 생활의 치열함을 견디는 가장의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생각해본다. 시대가 풍요로워짐에도 불구하고 감사함보다는 원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고, 장점을 보기보다는 무언가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대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시대의 사랑꾼 김첨지를 생각해보며, 오늘도 넘쳐나는 많은 것들에 감사를 느끼고, 우리의 어떤 것들은 알아봐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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