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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은븐니씨 Feb 28. 2022

약간의 자뻑이 유익한 이유

<송블리의 개똥철학> | 선자뻑후반성 실시-!

블리는, 마음부자다. 기본적으로 웃음이 많고 흥이 많고, 에교가 많고, 콧소리가 많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 매 순간 좋아하지는 않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게, 블리가 즐겁기만 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몇 가지의 노하우가 있는데, 오늘은 그중 하나를 천천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거두절미하고, 그 방법이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선자뻑후반성' 기술인데, 혼자, 귀여운 '자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자뻑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면, "오늘 내가 좀 멋있게 잘 꾸미고 나왔군"하고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며 스스로 칭찬해준다. 얼굴에 검은 흑먼지가 묻어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 모난 소리를 해도, "그래, 내가 너무 잘하기만 해도 문제가 될 수도 있어... 훗"이라는 자뻑으로 그 따끔한 순간을 존버 한다. 진짜, 자신의 고칠 부분이 있음에도 자뻑의 말로, 조금은 뻔뻔하게 참아내는 것이다.

물론, 상황을 정말 왜곡해서 해석하거나 상대방의 원래의 의도와 마음을 내 멋대로 해석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면, 대화의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훗날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듣기 싫은 조언을 들을 때 나 스스로가 할 말이 없어질 뿐이다. 위의 예를 든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얼굴에 검은 흑먼지가 묻어있으면 닦아야 하는 것이 그 정확한 해결방법이고, 누군가가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 혹은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을 진심으로 조언해주셨다면 나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 일 수 있는 것인가를 타인의 말에 따라서 겸허하게 들어보기도 해야 하는 것이 좋은 인간이 지녀야 할 태도다.

즉 타인의 말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과 해결책, 그리고 더 나아가 자성의 태도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자뻑과는 별개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필자는 먼저 일상생활 속에서는 나에게 힘이 되는 '자뻑'이라는 주문을 외워, 나에 대한 존중과 응원을 조금 첨가해줌으로써, 인생의 다양한 상황, 또는 재미없는 일상, 조금은 버거운 상황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니, 인생이 재미있고 행복해지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상황에, 말에 휘둘리기보다는 일단은 진정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약간의 귀여운 자뻑으로 나의 자존감 및 자신감에 대한 부분을 심리적으로 고양시켜주면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나의 마음이 철렁하거나, 주저앉게 되는 그런 심리 상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편, 그냥 자뻑없이 바로 타인의 말이나 어려운 상황을 수용하면, 그 충격의 정도가 너무 컸기에 나는 '자뻑'이라는 방어기제로 일단은 상황의 충격을 완화시켜 보기도 한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진짜 인생 상황에 대한 충격(?) 혹은 버거움 &아픔&슬픔은 홀로 있을 때, 다시 한번 진중하게 나 스스로가 생각하게 함으로, 자뻑으로 가려지지 않는 문제들을 용기 내어 마주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충격의 정도를 조금 낮춘 후에, 나 스스로가 인지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에서 다시금 그 상황들을 바라본다면? 내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나 말들을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스스로 마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심리적으로 훨씬 편안한 느낌이 든다. (물론, 나 편안하자고 자뻑만 하면 안 됨, 자신을 스스로 높이기만 하는 자뻑은 상당히 위험함) 그래서 필자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선 자뻑+후 반성의 노하우를 많이 써왔던 것 같다.

선자뻑 타임에 스스로에게 응원과 위로를 주었다면-스스로 마음에 방어기제를 만들려고 했다면-, 후반성 타임에는 자신을 갖고 나를, 냉철한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훑어본다는 것을 방점에 두고 노력하며 말이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있는 시간에, 기존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타인의 말들이나 인생의 상황들을 인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인이 스스로 상황에 대한 인지를 해야 문제를 고치거나 말거나  테니 말이다. 이러한 말들은, 아마도 우리의 대화 속에서도 많이 들어본 말들일 것이다. "걔에게 받아들일 시간을 , 걔에게 생각할 시간을 "라는 말들  갖고 있는 의미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에도 시간과 수용 방식  지점이 다르다는 것을 뜻 할 테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냉정한 의미에서 '자뻑하기'는 꼼수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 다양한 상황을 견뎌내기 위한, 혹은 인생을 더 재미있게 해석하기 위한 일정 정도의 응원으로 작용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상황의 원천적인 문제를 오롯이 해결해내거나 되돌아보는 방법은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귀여운 자뻑이 여전히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아마도 어려운 세상살이에 조금이라도 재미를 주고, 자신감을 주고, 위안을 주며, 심리적 충격이라는 공격에 방어막으로 작용하여 누군가의 심리적 충격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뻑하는 자아'가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송블리의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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