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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은븐니씨 Nov 27. 2021

난 내 눈으로 날 볼 수 없다.

송블맇의 개똥 푸념 | 마음의 눈을 키우면 어떨까


거울을 보다가, 난 내 눈알로 나를 한 평생 직접 마주 할 수 없는 미개하고 연약한..(?) 인간임을 느꼈다. 버스 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창밖 너머의 자동차. 색깔 바꿔 입는 나뭇잎. 푸르고 푸르러 맑고 맑은 내 눈알을 닮은 하늘일 뿐. 내 눈이 향하고 있는 것은 '안'이 아닌 '밖'이다. 내 눈으로 날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울을 통해서 단장할 때 그 유리에 비치는 시간에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유독 어린 시절부터 나의 '바깥 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선생님이 나를 어떤 아이라고 평가하고 이끌어주실까, 아빠*엄마는 나를 어떤 자녀라고 봐줄까, 일 생 이 내가 아닌 타인의 눈에 맞춰져 있었다. 물론, 그들의 평가와 시선에 따른 인정이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했던 부분은 매우 크지만. 이러한 내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 맡기는 일은 20대가 넘어서도 지속되었던 듯 싶다. 어떤 활동을 해야지 시간을 잘 보냈다고 평가를 받을까, 살이 찌면 나를 밉게 보진 않을까, 갖추어져있지 않으면 나 답지 않진 않을까.


내 눈알님은 한 평생 이런 나의 모습을 직접 보지도 못하는 입장인데, (간접적인 거울로 보는 모습, 지인들에 시선에 의해 보이는 모습) 대관절,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솟구치면서 이제는 나의 마음의 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활동, 예쁜 모양, 갖춰진 모습, 누군가에 시선에 들기 위해서 발악 아닌 발악 같은 노력을 하는 모습 말고. 날 위한 모습을, 나는 나를 위해 한 번이라도 오롯이 날 위해준 적 있는가? (물론, 원래 흐트러진 생활과 모습을 선호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날 위한 모습이 꾸민 것들, 누군가의 시선과 인정을 받는 모습 그런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 시선을 얻는 일 역시 대단히 멋지고 값진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과 더불어, 내 마음의 눈. 남에게 보이는 삶이 아닌 내 마음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함께 가꾸어준다면 한 평생 내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는 내 안구도, 어쩌면 더욱 밝은 눈망울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도 노력과 열정의 온도를 갖고 힘주고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제는 조금의 내 마음의 눈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아주어도 괜찮은 시점은 아닌지 심심한 고민을 시작해본다.


누군가를 위한 시선이 아닌,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내 마음의 원하는 그 시선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는 밤이다.



마음의 눈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지.

-송블맇의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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