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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19. 2021

불안 권하는 사회

어른의 불안에 대하여

까놓고 말해보자. 솔직히 우리가 불안한 건 우리 자신의 탓만은 아니다.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인터넷, TV만 켜면 심장이 쪼글쪼글, 간은 콩알만 해지게 만드는 불안한 소식들이 귀속에 와서 콕콕 박히는데 누군들 별 수 있을까. 돈이 주인이 되는 시대, 자고 일어나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불안을 만들어 장사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차고 넘친다. 그런 사회의 단면이 안 그래도 불안한 우리를 더욱 그렇게 만드는 거다.




사실 하나를 고백하자면 나도 사회의 불안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던 경험이 있다. 20대 후반 경력직으로 옮긴 직장은 병원 홍보팀이었다. 언론 관리라는 큰 틀 안에 회사 동향이나 건강 관련 보도 자료를 작성해서 TV, 신문사에게 보낸 뒤 그것이 보도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 임무였다. 시기적절한 건강 관련 이슈를 알리고 우리 병원 누구누구 원장은 이렇게 조언했다는 식의 흐름이 병원 홍보용 보도 자료의 기본 틀 중 하나다. 이때 핵심은 읽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 바로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질환을 소개하며 예방법, 좋은 음식 등도 나열하지만 끝부분에 치료시기를 놓치면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 전문가를 찾아가라는, 조언을 가장한 홍보성 문구를 넣어야 한다. 때로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표현을 덧붙이기도 했다. 비단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건 병·의원뿐이 아닐 것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겁을 잔뜩 주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뻥튀기하며 우리에게 "어흥!" 하고 덤비는 곳은 여기저기 깔렸다. 


나의 건강염려증은 이런 것들 탓에 금세 좋아지기가 힘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건강을 염려한다. 하지만 건강염려증은 걱정이 도가 지나쳐 당장 큰 병에 걸렸다고 믿거나 곧 죽을 것 같은 공포를 체험하는 상태이다. 여러 통증이 나타나자 병에 관한 정보를 뒤졌다. 신기하게도 웬만한 병의 증상이 내가 가진 것과 일부가 겹쳤다. 그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탔다. 특히 방송에서 어떤 연예인이 무슨 병에 걸렸다는 기사가 나오면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꼭 내가 그 환자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세포의 감각이 증상으로 향하고 있는 동안 불안은 더욱 증폭되어 나를 잡아먹었다. 의사를 만났다. 만났는데 또 만났다. 내시경, 심전도, 폐 기능 검사를 하고 각종 진료과목의 전문의도 만났다. 결과는 정상. 그러나 이 세상엔 몇 가지 검사만으로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질환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결과를 믿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폐 CT 검사까지 정상으로 나오고 나서야 병원 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과거에 내가 썼던 보도자료 때문에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불안에 떨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우리 병원에 환자가 늘면 좋은 일이라 여겼고 직원으로서 임무를 다한 것뿐이었지만 그것 탓에 어떤 이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쩐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 발등을 찍은 느낌이다. 


초고속 인터넷 덕에 이제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나의 불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글로벌 세상이다. 불안이 온전히 내 탓은 아닐지라도 안타깝게 그걸 헤쳐 나가야 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불안의 실체를 똑바로 봐야 한다. 가짜로 만들어진 허상에 두려워 떨지 말자. 잡히지도 않는 깃털 같은 불안에 지배당하지 말자. 우리의 현재를 그런 곳에다가 허비하지 말자. 


지난날 내가 쓴 보도 자료와 기사에 마음을 졸였을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미안했어요. 그때 제가 오버했어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런 기사들, 정보들 다 믿지는 마세요. 인터넷 검색, 그 요망한 것에 너무 기대지 마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 가만히 살펴보면 실체 없는 불안이 대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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