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글을 쓸까 말까 무척 고심했다. 댓글의 의견처럼 나와 딸 둘이 고민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널리 퍼뜨리고 싶었다. 한 여름에도 꽉 쪼인 속옷으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좋을지 같이 생각해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드러나야,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보태며 쉽게 목소리를 낼 테니. (이런 의도였는데 2주간 조회수 낮아서 별생각 없이 살았건만...!)
악플을 바라보았다. 너만 불편하냐? 나도 불편하다! 긴 글을 남길까 하다가 말을 아꼈다. 상대가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꺼이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으므로 그저 "댓글 감사하다고"만 달았다. 그건 진심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직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하기에는 폐쇄적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댓글 덕분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나에게 데이터를 주었다
악플을 읽으면 기분 좋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 글이 아닌 나를 공격하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무섭기도 하고 갑자기 연예인들의 고충을 이해할 것만도 같고 앞으로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수도 있다. 젊은 시절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엔 달랐다. 악플이 달린 후 첨엔 맘이 좀 상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게 되었다.
평소 브런치에 글을 쓰면 댓글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왜지? 생각한 적이 있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깔끔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논쟁의 중심은 교묘히 피해가면서 두루뭉술한 의견을 슬쩍 덧붙이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검열하는 것이다. 책잡히지 않게. 그런 글에는 내가 독자라도 해줄 말이 없을 것 같다.
몇 해 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쓴 작가 하완 님의 인터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브런치가 주최한 글쓰기 클래스에서 '논란이 될 만한 글을 써라'라고 했단다. 누가 읽어도 이의가 없게 쓰면 자기 생각이 안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읽는 이를 너무 배려하다 보면 솔직하게 못 쓰게 된다고. 자기 검열은 안 하면 안 할수록 좋은 것 같다고.
하완 님의 글을 읽은 후 계속 노력해 왔다. 독자를 너무 의식하지 않되 솔직함을 담아내면서도 나의 생각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법을 고심하고 연구 중이다. 올해 들어 치열하게 고민해온 문제 - 나는 왜 써야 하는가, 어떤 글을 추구해야 하는가와 맞닿아 있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작정하고 쓴 글에 달린 악플은 오히려 반가웠다. 가기로 한 방향 데로 잘 가고 있다는 방증 같았다.
글을 쓰면 언제나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기분이 된다. 쓰다 보면 내 이야기가 들어가고 내 생각이 더해지기 마련인데, 고작 이 정도의 사람이란 게 들킬까 봐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계속 쓰는 건 글이 주는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악플은 양반이다. 충격받은 악플은 따로 있다. 때는 2005년 5월, 지금은 없어진 제도인데 <다음>에서 시민기자 비슷한 걸 뽑은 적이 있다.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작성하면 다음 포털에 내보내 주는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과 6개월 일정으로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다음의 기자가 되었다.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 일본에서 수준 높은 장애인 배려 대중교통 시스템을 다룬 내용을 썼다. 역무원을 인터뷰하고 현장 사진도 찍으며 꽤 괜찮은 기사를 만들었다. 다음 측에 송고한 뒤 남편과 나는 경유 시간 포함 45시간 비행기를 타고 칠레 남극 마을에 도착했다. 며칠 뒤 PC 방을 찾아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내가 쓴 기사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린 걸 확인했는데 거짓말 안 보태고 100% 악플만 달렸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일본에서 칠레를 향하는 하늘에 있을 때 한국과 일본 사이 독도 문제가 터져서 두 나라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아졌는데 나는 그걸 몰랐고 다음 측에서도 고민 없이 일본의 장애인 배려 시스템이 좋다는 기사를 올린 것이다. 그날 나는 천하의 매국노, 나라를 팔아먹는 년, 정신 나간 사람이 되었다. 그때 먹은 욕으로 오늘날까지 잘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수많은 쌍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이것이다.
안송이 기자, 버섯 먹고 미쳤냐?!
내 본명이 안송이. 악플도 창의적으로 달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기사의 시의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웠다. 이제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악플. 노브라 전쟁의 댓글들도 언젠가는 웃음으로 승화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앞으로 쓰게 될 수많은 글에 어떤 식으로든 자양분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허튼 경험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