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이 소설은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일어난 일을, 딸이 화자가 되어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빨치산이라면 가족, 친척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살면서 억울하고, 황당하고, 슬프고, 분노에 가득 찬 일이 많았을 거라 예상되었다. 더구나 이것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고 하니 아마 실제 삶은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위트와 해학으로 무장한 채 담담하게 펼쳐진다. 읽는 내내 깔깔거렸고 끝내 흐느끼다가 감동의 물결에 휩싸여 출렁이다 보니 순식간에 마지막 장까지 와 있었다. 몇 십 년에 걸친 현대사의 단면을 축지법으로 돌아본 기분이다. 정지아 작가의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비슷한 느낌을 다른 문학책에서 받은 적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두 작품 모두 물처럼 흐르는 행동이나 사건 등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면서도 주인공의 감정선은 깊게 건드리지 않는다.
세 작품 모두 억울함, 슬픔 등의 감정을 쥐어짜지 않는다는 뜻이다. 슬펐네, 황당하네, 눈물이 났네 이런 언급이 없다. 그게 멋이고 그게 핵심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사뿐히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려면 얼마나 단련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독자는 눈물 젖은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남인숙 작가님께 글쓰기 수업을 받을 때 배웠던 내용인데 아직까지도 글을 쓸 때마다 외우고 다짐하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눈물 젖은 문장 하나 없이도 눈물 쏙 빼놓는 소설이었다.
선배들과 역사적 유물론을 공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내 삶의 철학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소설 속 아버지는, 빨치산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온몸으로 유물론을 받아들인 나머지 외출하고 돌아온 외투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다음과 같이 묻는다.
“사회주의의 기본은 뭐여?”
그러자 아내가 대답한다.
“그야 유물론이제라.”
“글제! 글먼, 머리는 둿다 뭣혀! 사람은 하늘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먼지로부터 시작됐다 이 말이여. 긍게 자네가 시방 쓸고 담고 악다구니를 하는 것이 다 우리 인간의 시원 아니겄어?”
웃음 빵. 초반에 등장하는 이 부분이 내가 이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들기 시작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