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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ul 20. 2023

길을 가다 소떼를 만났다

하일랜드 스카이섬

길을 걷다 소떼와 마주쳤다. 산의 곡선을 따라 굽이쳐 펼쳐진 길 덕분에 몇백 미터 앞에서부터 열네댓 마리 남짓의 소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200미터, 100미터, 50미터. 점점 가까워오는데 어랍쇼. 소를 몰고 오는 사람이 없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우리 가족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들의 걸음걸이가 미국 서부의 황야를 거니는 듯하다. 그러나 배경은 스코틀랜드의 스카이섬.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10미터를 남겨두고 사람과 소가 대치상태가 되었다. "소눈깔"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암만, 소는 순한 동물이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가 그렇다면 소싸움을 하는 소는 어떤 소인가, 하는 의문이 얹어졌다. 콧김을 내뿜은 채 뒷발질하며 달려드는 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쩌라고?"


분명하다. 소들이 우리에게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다.  남편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수준인 우리 집 개를 번쩍 들어 안았다. 자그마한 크기의 잭러셀 테리어인데 자기가 저먼쉐퍼드나 시베리안허스키와 동급인 줄 아는 애다. 소들에게 왈왈거리고 달려들기 전에 조심시키는 게 상책이다. 그런 뒤 우리는 일렬로 서서 조심조심, 소들이 선 오른쪽 구석으로 걸었다.  


그러자 덩치가 산만한 소들이 길 아래 풀밭으로 내려가 우리에게 길을 내어준다. 한 마리가 그렇게 하니 모두 따라 한다. 마치 자기들 곁으로 1미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너희랑은 살도 부딪히기 싫다는 듯.  


"고마워, 길을 비켜줘서." 


말해도 못 알아들을 소들에게 인사치레를 했다. 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이 무서워서 피하나, 하찮아서 피하지."


침입한 자는 인간이다. 하일랜드 자연의 주인은 소다. 그러니 길을 가다 소떼를 만나면 여러분들은 소들이 너른 품으로 길을 내어줄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면 된다. 그뿐이다. 


스카이섬 탈리스커 해안가 (Talisker Beach) 근처


* 2023년 7월 15일 - 하일랜드 스카이섬 (Isle of Skye)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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