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눈을 반기지 못한 이유
당신이 떠난 나의 가을에는
그날처럼 계속 비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비는 어느새 눈이 되어 먼지처럼 흩날립니다.
나는 눈을 참 좋아합니다.
눈이 올 때면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차가운 공기를 먹으며
어린아이의 동심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올해의 첫눈을
만지지도,
제대로 보지도,
온전히 느끼지도,
흠뻑 맞지도 못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맞을 첫눈을 기다리며
나는 내년, 내후년을 바랍니다.
우리는 여름의 청량함,
여름을 견뎌낸 가을의 깊음을 느끼고
가장 추운 겨울을 앞두고서 멀어집니다.
어쩌면 우리를 감싸던 사랑이란 테두리에 갇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걸까요.
두터운 테두리가 벗겨지고 나서야, 당신은
두려운 미래를 보게 된 것일까요.
나는 홀로
벗겨진 테두리의 흔적을 따라
다시 선을 그리고 있으렵니다.
나는 홀로
막연한 외사랑을 시작하렵니다.
코 끝이 아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맨발로 비포장도로를 걸어가듯
위태롭고 아픈 관계라도
나는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나와 그 길을 걸은 사람이 당신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 위를
평화롭고 따뜻하게 걸어가세요.
나는 당신의 조각이 남긴 파편 위를
지르밟으며 걷다가
저 멀리 하얀 눈 위의 당신을 발견하면
당신이 남겨둔 발자국 위를
고스란히 따라갈게요.
그리고 우리의 거리가 좁혀질 때
내가 그려둔 테두리 안에
마침내 서로가 알맞게 들어올 때
그때 함께 첫눈을 맞읍시다.
새벽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닿지 않는 회색 구름을 껴안으며
오래도록 우두커니 서서
당신의 흔적을 찾다가
노을이 빌딩에 부딪힐 때에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고요하게 범람한 감정이
눈밭에 흘러넘쳐 강이 되고
파릇한 새싹이 피어나고
새로운 봄이 시작되면
나는 다시금 첫눈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모든 계절에 당신을 담아 사랑합니다.
- 파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