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6개월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요가원을 찾았다.
첫 수업으로 오전 타임 Tommy 선생님의 Hatha yoga을 선택했다. Tommy는 6개월 전에도 아침 요가를 책임지고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맑은 피부에 생긋 웃어보이는 예쁘장한 이미지, 몸 근육과 목소리에는 강단이 있고, 수강생들을 향한 손터치에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여러 타임의 요가 선생님 중 나는 Tommy를 가장 좋아했다. 같은 요가 동작을 해도 어떤 안내자를 만나 수련 했는지에 따라 내 몸의 감각이 다르게 받아들였다. 선생님과 함께 하면 몸 구석구석을 깨우는 동작이 가능했고, 수련을 하는 동안 호흡에 집중할 수 있었고, 요가 후에는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선생님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수련을 시작한다.
수업이 막바지로 다다를 쯤, 선생님은 브릿지 동작을 안내했다. 온 몸을 눕히고, 두 다리를 골반 정도로 벌려 세운 후, 양 팔을 머리 옆에 가져다 놓고, 허리에서부터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정수리를 바닥에 눕혀 양 팔에 힘을 준다. 그렇게 내 몸은 브릿지 모양이 된다. 하지만, 하하 여전히 되지 않는다. 안간힘을 쓰며 온몸을 비틀어보고 두 팔에 힘을 주어 낑낑거려도 내 몸은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 결국 풀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렇게 이어지는 사바아사나, 수업이 끝이 났다.
허탈했다. 난 그간 무얼했던 걸까.
6개월 전, 나는 꾸준히 요가를 했었다. 브릿지나 머리서기 같은 멋드러지는 동작을 해내고 싶은데 나의 몸은 동작을 견디는 힘이 부족했다. 힘을 길러야했다. 그렇게 찾아간 헬스장, 그곳에서 나는 4개월 간 PT를 받으며 차근차근 무게를 올려 덤벨을 들었고, 데드리프트를 했다. 헬스를 등록할 때도 '요가할 때 동작을 잘하고 싶어서 왔어요. 특히 코어! 팔! 힘을 기르고 싶어요.' 희망 가득차게 포부를 밝히던 나였다.
멍하니 매트에 앉아 다른 수강생들이 매트정리를 끝내고 하나둘 수련실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멋쩍게 웃어보이며, 슬며시 그간의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동작 잘하고 싶어서 헬스하다 왔는데 여전히 브릿지를 못하네요. 선생님 저 브릿지랑 머리서기 꼭 하고 싶어요. 너무너무요.' 그간의 나의 행보를 듣고는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헬스와 요가에서 쓰는 힘은 좀 다른것 같다며,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앞으로 요가 꾸준히 잘 해보자며 나를 다독이며 격려했다.
풀 죽어있던 나는 선생님의 격려에 다시금 생기를 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간다. 살아오면서 나의 신체는 그리 유능하지 못했다. 학창시절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이었고, 종종 키 크고 날씬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달리 인바디에서 C자 형을 그리는 전형적인 마른 비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활력이 떨어지고 살이찌는 것에 대한 경각심으로 이런저런 운동을 시작했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힘들기만 하고 금세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요가만은 달랐다. 잘하지 못해도 꾸준히가 됐다. 2년 이상 한 운동은 요가가 처음이었고 요가라면 앞으로 평생을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브릿지는 하지 못했지만 다시 천천히 시작해본다. 글을 쓰는 오늘도 선생님이 제안해준 무릎대고 푸쉬업 50개를 했다. 언젠가 머리서기 동작을 가뿐히 해내는 나를 상상해본다.
작년부터 새로운 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발리에서 요가하며 한달 살기. 아마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이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보지 않을까 싶다. 최근 친구를 만나서 종알종알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발리에 요가하러 같이 갈 남편도 있었으면 좋겠어! 아 신혼여행 겸 요가여행가는 것도 좋고! 같이 수련하면서 지내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나의 호기로운 희망사항을 가만 듣던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친구는 한마디 한다. '그런 남자 찾기 힘들다.'
뭐, 아무렴 어떤가. 희망하면서 행복했으면 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