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연인
방안이 갑자기 환해진다. 그 남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뽀얗고 윤기가 흐르는 피부를 가진 남자는 세련된 옷차림만으로도 인상적이었다. 남자는 십 년이 넘게 오로지 한 여자만을 데리고 들어왔다.
“별채 그 방을 주시오.”
남자가 오면 장사장은 만족하였다. 남자가 타고 온 고급승용차가 자신의 여관 주차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백설장의 명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춘희 씨조차 이 남자를 은근히 기다렸다. 만 원권 지폐를 전화기 아래에 놓아두는 유일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가 데리고 온 여자의 모습은 남자의 윤기가 흐르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의 검고 메마른 맨 얼굴에는 화장기조차 없었고 옷차림 또한 촌스러웠다. 여자는 어디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백설장을 드나들었던 긴 세월 동안 점점 형편없이 늙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세월조차 비켜 가는 듯 그대로였고 여자는 마치 세월이 수직으로 관통한 듯 풍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 부유해 보이는 남자와 한눈에 봐도 가난한 여자와의 오랜 밀애의 비결이 무엇일까, 하는 속물적인 호기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는 방 안으로 먼저 고급시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여자는 들어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침대 위로 올라간다. 남자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나는 알아차린다. 여자는 남자의 심경을 이렇게 자주 흐트러뜨리곤 하였다. 남자가 싫어하는 행동을 일부러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간다.
여자는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켠다. 이것도 남자가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남자는 여관에 처음 들어왔던 순간처럼 여자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몰두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여자는 긴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많이 변했다.
“이래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나는 형편없이 늙어버렸는데도 말이야.”
여자는 내기하듯 남자를 괴롭히는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가 한 최초의 약속 때문이었다. 내가 널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평생 나와 가끔 이렇게 만나는 거야, 하고 말했던 남자의 말이 과연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쓸데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일을 할 만큼 자신이 근사한 모습도 아니면서 말이다. 여자는 사랑과 매춘을 구별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오랫동안 샤워를 한다.
“여기 좀 들어오지 그래?”
여자의 입가는 냉소로 일그러진다.
“싫어.”
남자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다. 이제 물소리가 그치고 남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나온다. 중년의 적당히 살집이 있는 몸은 그가 얼마나 몸 관리를 잘하고 있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탄탄한 몸은 고된 육체노동이 아니라 여유 있는 스포츠를 통해 잘 관리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여자 쪽을 힐끗 바라본다. 여자는 어느새 잠을 자고 있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화장대 앞에 서서 머리를 말리고 빗으로 정돈한다.
남자는 리모컨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에서 그것을 빼내 테이블에 올려두고 여자의 옆에 눕는다. 그리고는 여자를 깨울까 말까 망설이는 표정을 짓는다. 남자에겐 정확히 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뿐이어서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남자가 여기 이 방에 머무는 시간은 정확히 두 시간뿐이었다. 샤워를 하고 섹스를 하고 그리고 짧은 토막잠을 자고 그리고 씻고 나가기까지 정확히 두 시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