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이 나무가 되기까지

by 손묘

살고 있던 집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그곳을 정리하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우리가 이사한 주택 집은 붉은 벽돌의 오래된 낡은 주택이었는데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비용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좀 더 넓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빌라나 오피스텔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의 집주인들은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주택에 살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장점 하나는 확실히 있어 보였다. 그것은 나만의 마당, 텃밭이 생긴다는 것이다.


처음 주택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어두컴컴한 밤이었는데 그 어두운 와중에도 마당에 있는 텃밭이 눈에 보였다. 작지만 가꾸고 정리하면 뭐든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텃밭을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았고 그것을 전해들은 집주인은 흔쾌히 허락했다. 우리는 그렇게 주택 집에 살게 되었다.


텃밭에 심을 고추 모종을 사러 갔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고추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고추가 그렇게까지 크게 자랄 것을 알지 못했고 고추 모종 한 판을 통으로 사버렸다. 팔뚝 정도의 키를 가졌던 고추 모종이 어린아이의 키만 해질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고추가 커질 거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고추 모종을 10개 정도만 남겨두고 전부 당근으로 나눔을 해버렸다. 하지만 남아 있는 10개 정도의 모종으로도 텃밭은 가득 찼다.


겨우내 잡초더미와 쓰레기로 뒤덮여 있던 텃밭을 뒤집어엎고 고추 모종을 심으니 봄바람 타고 흘러간 향긋한 흙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벌들이 날아왔다. 흙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렁이가 살고 있었는데 지렁이가 많이 사는 땅은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이 오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지렁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심은 고추는 여름 내내 무럭무럭 자라 텃밭을 꽉 채우고 또 경계를 넘어섰다. 주렁주렁 매달린 싱싱한 고추를 따서 된장찌개를 끓일 때도 넣고 여러 가지 음식에 활용할 수 있었다. 고추가 많아져서 오래 먹을 수 있는 장아찌도 담갔다. 그런데 농사 초보의 한계인지 매달린 고추의 양보다도 고춧잎이 훨씬 많았다. 고춧잎무침을 엄청나게 먹은 여름이었다.


언제 크나 싶게 너무 작고 연약했던 모종은 어느새 거친 바람에도 쓰러져 꺾이지 않는 멋진 나무가 되었고 그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 가까운 줄기가 내 엄지손가락보다도 굵어졌고 잎은 또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헤아리기 힘들었다. 모종 시절엔 온갖 벌레와 진딧물이 괴롭히더니 다 크고 나니 그런 것 대신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와 앉는다. 텃밭에 앉은 예쁜 실잠자리, 고추잠자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진다.


고추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땅의 크기와 흙의 양에 관한 것이었다. 지렁이들이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분변토를 먹으며 비교적 넓은 땅에서 자란 고추들은 끝을 모르고 가지 끝을 뻗쳐나가는 반면 자리가 부족해서 화분에 심어 놓았던 고추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화분의 크기만큼만 자라났다. 분명 같은 판에 있는 고추 모종이었는데 이렇게나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넓은 땅과 좋은 영양분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돌보게 될 생명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좋은 것을 마구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짧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생존에 관한 기본 조건만 맞는다면 생명은 사그라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잘 키운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생명을 돌봐주고 키운다는 것은 시간과 고통과 노력과 감내의 결과이다. 그것은 순수한 희생이며 참 어렵다. 겨울이 오면 모든 고추나무를 뽑아내면서 내년의 텃밭을 그려 볼 작정이다. 생명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 소중하고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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