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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May 16. 2023

할미들이 잔소리하는 이유

공백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집에서 나는 하루종일 혼자 한마디도 안 하고 있을 수 있다.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고요한 적막을 즐긴다. 조용히 책 읽거나 필사하거나 영어공부하며 혼자 잘 논다.



 대화를 하려면 일단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하고, 때 맞춰 대꾸도 해줘야 하는데 이게 은근히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그런데 할미들은 다르다. 쉴 새 없이 속사포처럼 말들을 내뱉는다.



'말할 때 또박또박 끝까지 얘기해. 중간에 말 끝을 흐리면 사람들이 무시해.'

 '밥 먹을 때 꼭꼭 씹어먹어. 꼭꼭 씹어먹어야 두뇌 발달에도 좋아.'

 '설거지 거리가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설거지해놔. 쌓이면 더 하기 싫어.'

 '애들 잘 보는 게 남는 거야. 뭐 공부하고 책 읽을 생각하지 말고 애들이나 잘 봐.'



 이런저런 살림에 대한 이야기, 육아 조언, 행동거지, 그 밖의 조언 등등..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땐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다. 공백이 없다.



 어쩌면 할미들은 말의 공백(침묵)을 견디기 힘들어서 '잔소리'란 형태로 꽉꽉 말을 채워 넣는 게 아닐까. 그들의 후한 인심처럼 말 또한 항상 넘쳐난다.



 나도 할미가 되면 말이 넘쳐나게 될까. 딸들이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라고 볼멘소리를 하게 될까.



 공백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말의 텀이 길어서 젊은 사람들이 되려 말을 거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싫다고 거절하면 두 번 세 번 재차 권하며 기어이 안기고 마는 대신, 거절의사를 존중하고 더 이상 권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라지만 이런 소박한 소망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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