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 대신, 언니들이 있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우리에게 ‘친정’은 사라졌다.
누구 집에 모이자 말도 못 꺼내고, 각자 살기 바빴다.
엄마, 아빠 기일에야 겨우 얼굴 한 번 보는 사이.
서로의 근황도, 감정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무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명절이 제일 싫었다.
갈 곳이 없었다.
“이번 설엔 뭐 하지…”
그 말 한마디가 마음을 쑤셨다.
세상엔 여전히 엄마가 차려주는 명절 밥상 앞에 둘러앉는 가족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외롭게 흘러가던 어느 겨울, 엄마 기일에 모인 날이었다. 동생 얼굴이 창백했고, 말수가 유난히 적었다. 그날 밤, 동생이 조용히 말했다.
“… 언니들, 나 암 이래. 갑상선암인데 림프절까지 전이가 되어서 수술해야 해”
말이 끝나자마자, 네 자매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에게 친정은 없지만,‘서로’는 남아 있었다는 걸.
지금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건 바로 ‘서로’라는 걸.
나는 암센터 간호사지만, 그 순간은 도저히 이성적으로 동새의 암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조카들도 어린데, 꽃보다 예쁜 내 동생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순간, 엄마가 미웠다.
아무 말 없이 아빠 곁으로 가버린 것도 원망스러운데, 막내는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늘나라에서라도. 그날 밤, 원주에서 파주까지 달리는 차 안에서 나 혼자 엉엉 울었다.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이제는 내 마음 붙일 곳조차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더 고되게 느껴졌다. 게다가 동생까지 아프다니… 하나님도 너무하신 거 아닌가.
공평하게 순서대로 암을 주셔야지.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하루를 버텼다. 동생은 연세세브란스에서 로봇 수술을 받았다.
생각보다 림프절 전이가 심했고, 방사선 요오드 치료를 오랜 기간 받아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져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나는 간호사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게 더 미안하고 속상했다.
어느 날, 문득 생각났다. 어릴 적 자주 베고 자던 그 베개.
그래서 아주 유니크한 퀼트 천 조각들을 이어 베개를 만들어 선물했다.
“언니가 엄마처럼 곁에서 다 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걱정만 해줄 수 있어. 미안해
이 베개라도 베고 자면서 언니 생각해.
내 동생, 우리 막내 진영아.”
베개 하나로 모든 고통이 사라질 순 없지만,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랐다. 그 후에도 동생의 병세는 여러 고비를 맞았다. 우린 언니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 막내를 예전처럼 활기차고 건강하게 만들자!”
그 프로젝트의 시작은 운동이었다. 문제는 모두 다른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 아침마다 한 곳에 모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줌’으로 운동하기로 결정했다.
작은언니는 이미 줌마댄스, 라인댄스를 오래 즐겨온 춤바람 여왕이었고, 큰언니는 평생을 연구원으로 지냈지만, 드럼 동호회에서는 베테랑 드러머였다.
나는 테니스, 마라톤, 요가, 서핑까지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활동파 간호사. 막내는 운동이라곤 헬스클럽 러닝머신 정도였지만, 우리 셋은 그녀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뭉쳤다.
매일 아침 6시, 줌을 켰다.
작은언니의 지휘 아래, 땀과 웃음으로 채워진 자매들의 운동 시간이 시작됐다.
멘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혼쭐이 났지만, 운동이 끝나면 몸이 개운하고, 자매애는 더 끈끈해졌다.
우린 “단합대회”라는 이름으로 고성으로 떠나기로 했다. 사실 별 거창한 목적은 없었다.
그저 어린 시절 수학여행처럼 함께 웃고, 떠들고, 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 릴스에서 보게 된 셔플 댄스. 물리치료사 복장의 중년 여성이 신나게 춤추는 영상에 눈이 꽂혔다.
“아니, 이게 뭐야? 저렇게 신나게 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도전했지만… 망했다. 안 되는 거다.
마라톤, 요가,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까지, “너 태릉 가야겠다!” 소리 듣던 나였는데… 셔플 앞에서는 무릎 꿇었다. 이렇게 요망할 수가!
“셔플, 널 꼭 내 걸로 만들고 말 거야!”
그렇게 세 자매의 첫 여행이 시작됐다. 엄마 아빠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 그리움은 삼키고 또 삼켰고, 우리는 바다를 보러 고성으로 향했다. 큰언니 생일도 챙기며, 바다뷰가 멋진 방을 예약하고 여고생처럼 설렜다. 거기서 작은언니가 제안했다.
“서핑 한번 해보자.”수영을 못 하지만 도전의식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나. 당연히 콜! 큰언니도 콜!
우린 손 씨 집안의 저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아쿠아요가 경험 덕분에 보드 위 균형엔 자신 있었지만, 날것의 바다 앞에서 우린 번번이 나가떨어졌다.
그러다 결국 나도 보드 위에 섰고, 코치에게 “운동신경 좋은 분이시네!” 한마디 듣고 어깨 춤췄다.
2시간 동안 절인 배추처럼 파도에 뒤집히고 또 일어섰다. 그래도 해냈다. 세 자매, 다 해냈다. 호텔로 돌아와선 깔깔 웃으며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그날 밤은 여행답지 않게 일찍 잤다. 체력이 바닥난 우리는 수학여행의 밤샘 수다는 포기하고, 잠을 선택했다. 다음 날, 나는 혼자 일출 런을 했다. 해변 데크를 달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독대했다. 런은 내게 충전이었다.
고단했던 감정, 병간호의 무게, 삶의 굴곡들… 모두 태양에 맡기고 다시 힘을 냈다. 호텔로 돌아오니 언니들도 깨어났고, 곡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그 여름, 우린 ‘모쿠슈라(Mo Chuisle)’의 힘을 믿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자매애, 그게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언니, 근데… 셔플은 도대체 뭐야?”
“그건… 다음에 직접 보여줄게. 서핑은 아무것도 아냐.”
셔플에 대한 언니의 말에, 내 가슴은 또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 나는 몰랐다. 곧 다가올 ‘파투’가 나를 또 한 번 시험대 위에 올릴 거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