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있는 계략

by 손샤인

계절과 시간은 그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는, 유일무이한 존재 같다. 본능적이고, 진실되다.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기다리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에게도 기다리던 2월 말이 찾아왔다.

나의 워크숍엔, 사실 또 다른 계획이 숨어 있었다.

우선 남편에게 대놓고 “워크숍 간다”라고 말할 만큼 뻔뻔하진 못했다. 물론 언니들과 함께라면 두말없이 허락하겠지만,

주말 내내 나만 기다릴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 아직 양심은 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워크숍 3일째 되는 날 남편과 형부에게 제주도로 오라고 했다.

그들에게도 3일 휴가를 내고, 이번 기회에 제주 가족 친목회를 하자고 은근슬쩍 꼬드겼다.

형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언니를 무진장 좋아하니, 무조건 콜. 남편도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나는 유난히도 제주도를 좋아한다. 오래전, 아빠가 돌아가신 뒤 심한 우울증에 빠졌던 나는 제주에서 3년을 살았다.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고,

틈만 나면 오름을 오르고 해변가를 산책했다.

그 시간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아빠를 기리는 시간이었다. 제주살이를 마치고 육지로 돌아오던 날 —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가 탄 배가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심장마비로 쓰러지셨고,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이건 어쩌면 나만의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제주에 가면, 육지에 엄마가 살아 계시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비록 이젠 두 분 다 곁에 안 계시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함께 계신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제주에 가면, 두 분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믿음이 — 내 안에 있다.

이번엔 내가 셔플 고급반 과정을, 언니들은 전문가반 과정을 수강 중이다.

레벨도 다르고 배우는 스텝도 다르다 보니, 은근 경쟁 아닌 경쟁이 붙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공통 목표는 하나. ‘수료’는 기본, ‘합격’은 필수! 그 목표를 향해 우리는 주말마다, 아니 때론 평일 밤까지도 만나서 셔플 릴스를 찍고, 스텝을 맞춰보고, 셔플신의 강림을 기다렸다.

“무릎꼬뱅이 나가도록” 연습했다는 건 농담 반, 진심 반이다.

누가 보면 그냥 재미 삼아 추는 줄 알겠지만, 우리 자매셔플 은근히 치열하다.

각자의 레벨에서, 각자의 몸으로, 인생 셔플을 추는 중이다.

서로 제주도에 도착하는 시간이 달랐기에, 공항에서 기수동기들을 만나 단체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왕 공항에 모인 김에, 단체로 셔플 릴스를 용기 내어 찍어보기로 했다.

보는 눈도 많고, 중년의 남녀들이 실수라도 하면 흉해 보이지 않을까 긴장도 되었지만, 함께였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음악이 시작되고 우리는 춤을 췄다.

생각보다 훨씬 멋졌고, 공항 한복판에서 버스킹처럼 셔플을 마치고 난 뒤엔 대견함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쉘 위셔플 선배님 한 분이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계셨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2박 3일 숙박하며 열셔플(!)을 하기로, 맹세 아닌 맹세까지 나눴다.

그 선배님은 펜션 1층에 ‘셔플연구소’라는 이름의 사무실까지 마련해 두셨다.

누구든 찾아오면 마음껏 춤추고 힐링할 수 있도록,

셔플에 진심이신 또 한 명의 ‘셔플 전사’이신 것이다.

나는 다행히 언니들과 항상 함께라 걱정은 없었지만,

사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좀… 솔직히…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따로 있다.

평균 연령 50대 이상인 그분들,

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춤을 춘다.

모래바닥, 돌바닥, 시멘트바닥, 카페 바닥…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춘다.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심지어 멀미까지 났다.

이 미친 체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진심 따라갈 수가 없다.

멥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더니,

나는 내 가랑이를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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