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가 되고 싶은걸 꿈꾸고 내가 변화시킬 미래를 기대하던 시간. 어느 면에서 나의 10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나'로 존재하는 '자기밖에 없는 생'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던가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많이 불안했고 긴장했으며 늘 조바심에 떨었다. 하지만, 희망이 있었다. 자신을 하얀 도화지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언제까지고 하얀 도화지로만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밑그림을 그려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확신에 차 붓부터 드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연한 색 심의 연필로 조심히 그려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꿈에 대해 어떤 직업을 대입해서 그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조금 달랐다.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청사진은 있었다. 나는 행동하는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행동하는 철학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혁명가인가. 때론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아니다. 다만, 나는 나의 주관을 갖고 나다움을 잃지 않으며 나답게 생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성인군자처럼 살 순 없더라도, 내 소신껏 옳은 선택을 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치들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것을 꿈꿨다.
좋아하는 책인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나는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게 꼭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가치나 신념이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껏 어린 시절엔 '자기밖에 없는 생'을 살아왔고, 또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를 잃고 자기 밖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쫓아 살아오기도 했다.
'자기밖에 없는 생'과 '자기 밖의 생' 사이에서, 가장 '나'다운 생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