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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시나 Sep 17. 2024

결핍과 궁핍 사이

가장 아픈 아이

  사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을 쓸 때면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내 과거에는 내가 아는 가장 아픈 아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방 안에 앉아 빼앗길 글을 쓰던 아이. 외로웠던 아이, 그래서 괴로웠던 아이.


나의 유년기, 내가 아이로 살던 때는 갑자기 이 세상이 불현듯 정전된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신나게 들어선 놀이동산에서 갑자기 불이 꺼진 채 텅 빈 회전목마의 마차에 실린 것 마냥 공허하게 남겨졌다. 내가 탄 마차는 분명 화려한 금빛이었, 더는 빛나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가 넘쳤던 순간들이 현실로 인해 결핍과 궁핍사이의 어딘가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그렇게 가장 아픈 아이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행복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그 시기의 어린 자들은 저마다 내면에 자신이 돌봐야 할 가장 아픈 아이를 마주 해야 했다.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나는 부쩍 비밀이 많은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생각들을 노트 한편에 빼곡히 쓰고 그걸 죽죽 찢어버리곤 했다.


사람은 혼자 읽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고 하지만, 나는 혼자 읽는 일기장조차도 써내려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쓰고 지우고 찢었다. 빼앗길 글이라면 내 손으로 찢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바라는 문장들을 썼고 좀처럼 오지 않는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도 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오늘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버텨나갔다. 그리고 힘든 일은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듯 다음날은 또 희망을 써 내려갔다. 빼앗기지 않으려 찢으며, 나는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괜찮다고 자신을 독려했다.


그러나 쓰면서도 나의 궁핍함은 끊임없이 나의 결핍을 구멍 냈기에 나는 쉴 새 없이 내 마음을 메꿔야만 했다. 그렇게 내면의 아픈 아이는 오랫동안 종종거렸다. 아직도 때로 종종거리지만, 이제 더 이상 내 글을 찢지 않는다.



내가 쓴 글 한 칸 한 칸 사이로, 봄이 스며 있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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