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내구성이 약하다. 그래서 자주 바스러졌다. 나를 쳐다보는 날 선 눈빛에 쉽게 베였고 나를 향해 뱉는 짧은 낱말에 가볍게 조각났다. 나는 매 순간 자유롭고 싶었으나 결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지 않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모두와 잘 지내고 싶었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의 기분을 조율하며 분주히 우왕좌왕하던 시간 속에서 나는 점차 더 흐려져갔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는 날이 늘어났다. 타인과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혼자 겉도는 기분을 느꼈다. 듣고 있는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할 수 없었다.
나는 답답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람들 속에서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집에서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아예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곳으로 가서 박혀있고 싶단 생각을 하며 자꾸만 도망치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역시 마음을 먹는 것보단 모른 척하는 것이 편했으므로 쉬운 선택을 했다.
대가는 잔혹했다. 나는 점차 빈껍데기가 되어갔다. 나비가 되어 벗어낸 번데기의 허물이 아니라, 어느 이름 모를 바닷가 모래사장의 속이 텅 빈 조개껍데기가 되었다. 내 속엔 알맹이가 없었다. 그저, 무엇인지 모를 공허한 소리만 맴돌았다. 나는 점차 마음이 병들어갔고 생각은 느릿해져 갔다. 그 무렵에 이르러서야 나는 더 이상 이런 상태론 자신이 위험하단걸 자각하고 현실을 직시하려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왜 도망치려는 것인가, 무엇으로부터? 사실, 나는 스스로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의지로부터의 도피였다. 미움을 견딜 의지, 나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 소신껏 살겠다는 의지말이다. 의지를 다져야 하는데 그럴 마음과 에너지가 없었으므로 자꾸만 현실에서 달아난 것이다.
피곤하고, 두려웠고, 너무나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으니까.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쪽으로 맞추고 행동하면 적어도 세상의 기준에는 맞으니 평균쯤은 되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 속에서 나는 스스로 조금씩 마네킹이 되어간 것이다.
나는 이제 내 빼앗긴 글의 단어 중 '미움을 견딜 의지'를 되찾고자 한다.
사실, 대단한 의지까지는 필요치도 않다.
의향 정도 만으로도 충분하다.
미움을 견딜 의향을 조금씩 갖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재단하는 나쁜 버릇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미움도 마음의 한 조각일 뿐이다. 한 조각의 감정엔 한 움큼의 신경만 쓰면 된다. 미움받을 용기까지는 내지 않아도 괜찮다. 미움을 견딜 의향을 조금만 가져본다면,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그렇게 평온한 마음의 봄을 되찾기를 바라본다.